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37) ‘한재-토끼재’ 구간(2019. 10. 19)
섬진강 경계로 마주선 백두대간·호남정맥…장엄한 풍경에 탄성
한재 넘자 따리봉·도솔봉 웅장한 자태 반겨
반야봉~천황봉 지리산 연봉들 손에 닿을듯
신선대 오르니 백운산 정상 멋진 바위들 인사
갈미봉 정상에선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호남정맥. 지리산 영신봉에서 내려오는 백두대간 능선도 한 눈에 보인다.

오늘은 순천에 사는 둘째 동서와 함께 백운산 구간 종주에 나섰다. 논실마을을 지나 송어장 근처에 차를 대고 8시 50분경 한재를 향해 출발하였다. 한재까지 약 1.8km의 접근로는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어 SUV 차량 같으면 충분히 올라올 수 있는 길이다. 8월 말까지는 쇠사슬로 통제를 하는데 지금은 열려 있다. 한재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서둘러 바로 보이는 1,030봉까지 힘을 내어 올랐다. 한글날 지나 온 따리봉과 도솔봉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하늘은 비갠 뒤끝이라 더할 나위 없이 청명하다.

1,030봉 근처의 바위로 된 조망지점에 이르니 지리산 연봉이 반야봉부터 천왕봉까지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실개천처럼 보이는 섬진강을 경계로 바로 마주 보고 있는 장엄한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랫동안 산행을 쉰 동서가 근육이 뭉친다면서 먼저 가라고 권하여 혼자서 급속행군으로 신선대까지 단숨에 올랐다.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뭉쳐 서 있는 신선대 중에서 유독 바위 하나가 사람의 형상을 띄고 있다. 신선대 암릉 옆을 우측으로 돌아서니 600미터 앞에 백운산 정상의 멋진 바위들이 나타난다. 오늘 산행 중의 최고봉이자 지금까지 종주한 호남정맥 중 금남호남정맥이 아닌 주화산에서 시작되는 순수 호남정맥 중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다. 유독 도선국사와 연관된 설화가 광양 쪽에 많은 이유가 바로 위 호남정맥 중 최고봉인 백운산이 호남정맥의 마지막 기와 혈이 뭉친 곳이어서 아니겠는가.

신선대

막 정상쪽으로 발을 내딛는데 착지를 잘못 해 왼발을 접질리고 말았다. 다행히 약간의 통증은 있지만 걷는 데는 이상이 없다. 백운산 정상을 100m 앞에 둔 순간 눈앞에서 한 산꾼이 나타난다. “어디에서 오셨소”라고 말을 붙였더니 “5회 강행옥 선배님 아니십니까. 저 8회 정일균입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김경진 국회의원과 최영호 남구청장, 이용빈 민주당 광산갑 위원장 등 3년 후배들 중에 유독 정치인이 많은데, 그 지도선생님이 친형님인 강병원 선생님이다 보니 8회들이 나까지 덩달아 잘 아는 것 같다. 우연히 만난 후배 덕분에 백운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둘이서 다정하니 인증사진도 찍었다.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한 무리의 산꾼들을 만났다. 염소가 바위 능선 여기저기 똥을 싸놓아서 그것이 화제다. 호남정맥 종주 중에 멧돼지는 한 마리도 못 보았는데, 염소 떼는 여러 번 만났다. 방목하는 염소들도 대장이 있는데 덩치가 큰 수컷대장은 나를 보고서도 노려볼 뿐 도망가지 않아서 큰 소리를 질렀더니 그때서야 달아났었다.

백운산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서둘러 매봉 쪽으로 향한다. 오늘은 저녁에 결혼식이 두 군데나 있어서 4시 이전에 하산을 해야 해서 마음이 급하다. 백운산에서 매봉(885m)까지는 3.6km가 되는데 고도차 때문에 사실상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나 다름없다. 억불봉(1,008)이 오른쪽에 솟구쳐 있어서 마치 그쪽이 정맥 길 같은 느낌이 든다. 이쪽 길은 참나무 숲이 너무 무성해 주위의 경관도 잘 보이지 않는데 그나마 길은 또렷하다.

10시 43분에 백운산 정상을 통과했는데 11시 45분쯤 매봉을 지났다. 여기에서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쫓비산 까지는 12km가 남았다. 점심도 생략하고 동서가 싸온 계란 두 알과 빵 1개를 식사 대신 먹고 도상거리 2시간인 천황재를 1시간 만에 통과하고 갈미봉(519m) 쪽으로 향한다. 계속적으로 정맥 길이 거의 350m 고도까지 낮아지다가 갑자기 갈미봉이 솟구쳐 있어서 오늘 구간 중 처음으로 숨이 차게 한다. 결국 갈미봉을 오르는 데만 30여분이 걸릴 정도로 발걸음이 나아가지 않는다.

백운산 정상에 선 필자.

1시 30분이 넘어서 가까스로 갈미봉 정상에 올랐는데 멋지게 지어진 정자에서 보는 지리산 능선이 기가 막히다. 여기에서는 지리산 영신봉에서 내려오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요즘은 백두대간 끝을 천왕봉이 아닌 망덕포구 맞은편으로 보고 있다. 갈미봉에서 쫓비산까지는 2.9km인데 특별한 높낮이가 없이 편안한 길이 계속된다. 산성처럼 완만한 길을 따라 1시간이 못된 두시 반에 쫓비산에 닿았다. 좇비산은 다압면 매화마을과 관광농원 위쪽에 있어서 몇 차례 산악회를 따라 다녀 간 산이다.

옛날 추억을 되새기며 토끼재까지 2.2km 남짓한 하산 길에 오른다. 백운산에서 쫓비산까지 12km를 3시간 30분에 주파하느라 꽤나 지쳤는데 하산 길이 너무 좋아서 방심하고 걷다가 460고지에서 그만 직진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왼쪽방향에 리본들이 많고 직진하지 못하게 큰 통나무로 길을 막아 놓았는데도 혼자서 상념에 잠겨 멍하니 걷다가 통나무 오른쪽으로 우회하고 만 것이다. 300미터 이상을 내려갔다가 트랭글을 켜보니 오른쪽에 보여야 할 수어저수지가 왼쪽에 보이는 것이 영 반대편으로 온 것이 확인된다.
 

쫓비산 표지석.

할 수없이 뙤약볕에 다시 힘을 내어 460봉에 올라보니 왼쪽으로 하산로가 뚜렷히 보인다. 결국 30분 이상을 알바를 하면서 토끼재에 다다르니 벌써 3시 50분이 되고 말았다. 급속행군으로 벌어 놓은 시간을 주의력 부족 때문에 다 까먹은 것이다. 대간 길이나 정맥 길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철칙이다. 대개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서 실수하기 쉽다. 우리 인생도 잘못된 선택을 고집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인생 말년에 실수가 잦다는 점에서 산행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토끼재로 마중 나온 동서 덕분에 택시비를 아꼈는데 아마도 40,000원은 아낀 것 같다. 동서와 같이 온 처형께 “나중에 소고기 살께요”라고 농담하고 처형이 건네 준 단감 1개를 순식간에 다 먹어치우는 것으로 하루의 산행을 마감하였다./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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