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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82)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82)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82)

“왜 귀찮게 하시오? 이 일은 사적으로 행하는 것이오이다.”

정충신이 역정을 냈다.

“왜 소인이 귀찮게 하겠습니까. 어른께서 모처럼 고향에 오셨는데, 당연히 모셔야지요. 어서 가시지요.”

“내가 연령상 연하요.”

“나이 때문에 어른이시겠습니까. 엄연히 나라에서 정한 지체 높은 신분이신데, 당연히 모셔야지요.”

“나를 보살필 시간에 백성들을 돌보시오. 정 이러시면 나는 지금 상경하겠소.”

그러자 목사가 당황한 기색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면 소인이 딱 한마디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도성에 가시면 소인 감사 자리 한번 살펴보아주시오. 광주는 타관이오. 풍류를 즐기며 노는 곳으로는 적지이지만, 큰 뜻을 펴기에는 좁은 곳이오. 내 지금 면포 삼백필과 소금 이백가마니, 백미 삼백가마니를 가지고 있소이다. 원한다면 이 중 우마차에 쓰임새있는 것으로다 실어보내겠습니다.”

그것을 모두 백성들로부터 취했을 것이다. 지방관의 부패도를 알 수 있었다. 정충신이 노여움을 참고 말했다.

“고향의 수령이니 정중히 말씀드리오. 나는 그 말 안들었소. 그것만으로도 귀하를 보아주는 것이오. 물러서시오. 두 번 다시 백성들 괴롭히는 일 없어야 하오. 만약 그런 말이 들릴적시면

내 가만 두지 않겠소.”

정충신은 그 길로 말을 몰았다. 장성 갈재를 넘어 정읍-익산-논산-공주-천안을 거쳐 단 며칠만에 과천 남태령 한 고을에 이르렀다. 비교적 큰 마을에 연희단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정충신은 먼 발치에서 이들의 공연을 지켜보았다. 벙거지를 눌러쓰고 채찍을 든 말뚝이와 취발이가 서로 희롱하고 있었다. 취발이는 나랏돈을 횡령하고 양반에게 잡혀오지만 양반과 금품으로 타협하며 벌을 면한 장면이다. 비속어와 양반투의 언어 유희를 하며 반어, 익살을 풀어내는 것이 볼만하였다.

“나리! 북방의 여진족이나 남방의 왜구 무리가 만 명만 쳐들어와도 우리나라는 무너져버릴 것이오. 그런데도 팔자 늘어지게 군역놀이이오이까? 돼지, 염소새끼에게까지 사람으로 둔갑시켜 군역을 물리며 유유자적할 수 있소?”

“이런 쳐죽일 놈, 말이 많구나. 그런 너는 군역을 거부하느냐?”

연희단은 양반의 부패를 풍자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과중한 부담에 도망을 가자 아이와 노인까지 불러 군적에 올렸다. 이들이 군역에 나서지 못하면 세곡(稅穀)으로 떼우라고 했다. 그러나 줄 것이 있어야 주지. 전쟁이 끝났어도 관리들의 학정과 탐욕은 심했다. 그러는 사이 말뚝이가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칼로 자신의 생식기를 자르는 시늉을 한다. 그의 아내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말뚝이의 아래를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한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정벌 나간 남자가 못돌아오는 수는 있어도 남자가 자기 자지를 잘랐단 말은 내 평생에 처음 보오! 죽은 시아버지와 생후 보름 된 갓난애를 군적에 올려 재물 빼앗아가는 놈들아, 나는 살아도 못살어! 나는 살아도 못살어!”

그러자 구경꾼뜰이 와크르 그릇깨지는 소리로 웃었다. 남자가 자해를 한 이유는 군역 때문이라는 것을 구경꾼들은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눙치는 해학으로 세상을 야유하는 것을 여유있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속마음은 쓰리고 아프리라.

“부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졌소. 당장 바로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오.”

누군가가 해설을 하는데 주어가 빠졌지만 누구에게 말하는지 구경꾼들은 알고 있었다. 정충신은 세상 사람들을 통해 나라의 부패상을 보았다. 세도가들은 돈을 받고 관직까지 사고 판다. 통상 2,3년이던 관직의 재임기간은 1년으로 대폭 줄었다. 어떤 곳은 일년에 세 사람이나 수령이 바뀌는 곳도 있었다. 수령이 바뀔수록 뇌물을 더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관찰사는 10만냥, 목사는 5만냥, 군수는 3만냥, 현감은 1만냥이오!”

말뚝이가 외치자 객석에서 구경꾼이 “에이, 더러운 새끼들!”하고 침을 칵 뱉었다. 그러자 다른 구경꾼이 물었다.

“부사는 얼마요? 그것이 공정가격이오?”

“모두가 백성의 고혈값이오! 부족하면 무기를 대시오. 어떤 관리는 무기를 고철로 팔아서 출세했소!”

조선의 군사 병력은 서류상으로는 십만 대군이었지만, 내용상으로는 군사도 무기도 갖춘 것이 없었다. 이러니 외적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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