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중단된 ‘할론 소화기’ 최장 20년째 비치

국립광주박물관은 소화기도 유물?
생산 중단된 ‘할론 소화기’ 최장 20년째 비치
사실상 방치 상태…사용기한 없는 법 적용 탓
내부장치 부식·소화 약재 변질 가능성 우려
소방당국 “제조 10년 지나면 교체해야 안전”
 

문화재를 보호해야할 박물관이 사실상 화재 예방에 손을 놓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일 국립광주박물관 1층 선사·고대문화실 입구에 비치된 소화기가 제대로 점검되지 않고 있는 모습.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국립광주박물관이 화재 예방기구인 소화기들을 최장 20년째 비치하면서도 파손상태 여부도 점검하지 않는 등 사실상 방치상태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광주박물관 소화기들은 인체에 유해한 약품이 포함돼 신규 생산이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9일 남도일보 취재진이 방문한 광주광역시 북구 광주박물관. 1층 로비 오른쪽 선사·고대문화실 입구에 은색 할론 소화기 1대, 전시실 내부에는 2대가 내버려진 듯 비치돼 있었다. 소화기의 손잡이엔 먼지가 가득했다. 소화기 제조일은 19년 전인 지난 2000년으로 적혀 있었다.

상황은 2층 신안해저문화재실도 마찬가지였다. 소화기에는 정기적으로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점검표가 붙어있었지만, 아무 기록도 없었다. 그동안 소화기 관리를 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모두 할론 소화기였다.
 

국립광주박물관 1층 선사·고대문화실에 비치된 소화기. 제조일자가 지난 2002년 12월로 무려 17년이나 지났다.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본보 취재 결과 광주박물관에는 할론 소화기 14대(1층 6대·2층 8대)가 비치돼 있었다. 제조 일자는 지난 2000년부터 2002, 2007년으로 길게는 19년, 짧게는 12년이 지난 소화기들이었다.

박물관이 이처럼 오래된 소화기를 비치하더라도 법에는 저촉되지 않는다. 현행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화기는 사용 약품과 방법에 따라 탄산수소나트륨 분말을 사용한 분말 소화기, 할로겐 화합물 가스의 할론 소화기, 이산화탄소 소화기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분말 소화기만 사용기한이 최대 10년으로 규정돼 있다. 할론 소화기와 이산화탄소 소화기는 사용기한이 없다. 따라서 두 소화기는 20년, 30년을 비치해도 위법이 아니다. 소방당국에서 10년이 지날 경우 교체를 권장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권장’에 불과하다.

이에 국립광주박물관 측은 사용기한이 없는 할론 소화기라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립광주박물관 관계자는 “할론 소화기는 사용기한이 없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점검이 소홀했던 부분은 담당자에게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국립광주박물관 1층에 비치된 소화기.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하지만 소화기의 장기사용에 대해 일선 소방서와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할론 소화기는 사용기한이 없더라도 10년 이상 될 경우 내부장치 부식이나 소화 약재가 제 역할을 못 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또 소화기에 담긴 소화 약재인 할론 가스는 인체에 유해해 국내에선 지난 2010년부터 할론 가스 생산·판매가 금지돼 있다. 아울러 할론 소화기 생산도 중단됐다.

광주 북부소방서 관계자는 “분말 소화기뿐만 아니라 다른 소화기들도 10년 지나면 교체하는 것이 안전하다”며 “소화기 지시 압력계 바늘이 정상을 뜻하는 녹색을 가르켜도 안전성 검사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을 찾은 한 시민은 소화기 상태를 보고는 “역사적 유물을 관리하는 박물관에서 화재 소화기를 제대로 점검 관리하지 않는 건 사용기한을 떠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박물관이어서 오래된 소화기도 유물로 여기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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