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84)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84)

정충신이 상감 앞에 이르러 예를 취한 다음 납작 엎드렸다. 조정 신료들이 그 옆에 배석했다.

“왜 한양을 거치지 않고 근무지로 가려했던가.”

“안주 전령으로부터 급보를 받은즉, 즉시 귀임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한양을 뒤로 하고 북으로 올라갔나이다.”

“그렇다면 변경에 무슨 긴박한 변고가 생겼단 말인가?”

“변경은 늘 변고가 생기므로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후금의 동태 또한 심상치 않습니다.”

“동태가 심상치 않다?”

“본디 후금은 약탈민족입니다. 동태를 굴리지 않으면 넘어지듯이 그들은 전쟁을 해야만이 굴러가는 민족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들에게 공격의 단초를 제공했나이다. 내치가 불안하면 적은 그 틈을 노려서 공격해옵니다. 나라의 안정이 또한 또다른 국방력입니다. 후금국은 이괄의 난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가.”

“조선이 난을 당했을 때는 외부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명나라를 공격하는 데 안도하는 것이고, 대신 조선이 난을 수습하니 자신들의 꽁무니를 파버릴 것이 두려워서 전전긍긍하고 있나이다. 그래서 치러 내려올 수 있습니다.”

“명색 잘 싸우는 군사를 갖고 있는 것들이 우리같은 작은 군사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진정한 군사강국은 안정기에 더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군사지도(軍事之道)의 기본입니다. 인생도 몸이 건강할 때 몸을 더 살펴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들은 지금 상대국을 선제공격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습니다.”

“난중에도 항상 걱정스러웠던 것이 후금 오랑캐의 기습전이었는데, 정 공은 3년전에도 후금국을 다녀오지 않았던가. 후금국의 형편을 좀더 상세히 말하고, 오랑캐가 기세를 올려 쳐들어온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말해보라.”

“지금까지 우리가 알다시피 후금국은 유목민족으로서 고기만 먹고 사는 종인지라 호전적인 민족입니다. 말을 잘 기르고 잘 다루기 때문에 뛰어난 기동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 기마부대가 휩쓸고 지나가면 산천초목이 초토화되어버립니다. 아마도 명나라도 성치 못할 것이옵니다.

“정공은 누르하치의 자식들과도 친교를 맺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 우정은 쓸모가 없다는 것인가?”

“신이 오랑캐의 소굴에 출입하였으므로 적의 정세도 잘 알고 있으며, 누르하치의 열여섯 아들 중 홍타이지 등 용감무쌍한 몇 아들을 알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아는 것은 일시적으로 친선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 근본적인 방비책은 되지 못합니다. 친하지 않는 것보다는 친한 것이 낫겠으나, 우리는 상대방의 은전을 바라보고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뚝 설 수 있는 근본 대책이 필요합니다.”

“근본 대책?”

“그렇사옵니다. 백성들이 각자 주어진 의무를 다하도록 제도를 일신하고, 민심을 사야 합니다. 신 역시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자 전선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민심이 사나운가.”

그것을 모르면 바보다. 임진왜란 7년 전쟁과, 이괄의 난 등 연거푸 난을 겪은 조선반도는 근년에는 흉년까지 들어 백성들이  풀뿌리와 나무 껍질로 연명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짐승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민심을 살펴야 하옵니다. 신이 아는 송도남 어사는 관북지방과 서북지방에서 활약 중인 바, 그에 따르면, 먹을 것이 없어서 태어난 아이를 삶아먹었다고 합니다. 나라가 허약하고 안위가 걱정이 되면 외침을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소신, 변경부터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 만백사 제하고 북변 전선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연 평안병사(平安兵使) 겸 영변대도호부사(寧邊大都護府使) 훈봉을 잘 내렸군. 충의와 용기가 하늘에 닿은 맹장이로다. 조그만 공만 있어도 옥수수 튀김처럼 부풀리고 과장하여 자기 공을 내세우려는 풍조가 만연한데, 자기 공을 숨기고 맡은 임무에 충실하고자 하는 장수,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헌데 강성한 후금이 조선의 근심거리라고 했겄다?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적이 철기(鐵騎:철갑을 두른 용맹한 기병)로써 쳐들어오면 똑같이 야전으로 맞서 싸우기는 어렵습니다. 조선의 산악 지형을 이용해 산성을 지키면서 유격전으로 대항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조선 산악지형에 알맞은 전법을 개발해 놓았나이다. 전법을 개발해도 사람을 놓치면 안됩니다. 후금으로 도주한 한명련의 아들 윤, 투항한 강홍립, 가도의 모문룡을 살펴야 합니다."
그때 연안부사 남이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왕실이 부름을 받고 달려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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