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86)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86)

“무슨 근거로 고따우로 음해하고 있소? 일선에 가야 할 사람이 감히 상감마마 안전에서...”

“음해가 아니오. 근거를 가지고 있소.”

“신료들을 비난하는 것이 그것이오?”

그러자 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신료들이 다투면 자리를 피해버리는 습성이 있었다. 입장이 거북한 측면도 있지만, 다툼에는 어떤 무엇에도 관여하고 싶지 않은 성격을 갖고 있었다. 왕이 내전으로 들어가자 신료들이 정충신을 노려보았다. 정충신은 굴하지 않고 말했다.

“삼남의 어느 고을에 이런 일이 있었소이다. 아들이 군 징발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료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정충신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 아들 삼대가 뱀을 잡아 연명하는 땅꾼이었소이다.”

그들이 잡는 뱀은 맹독이 있어서 특출한 기술이 아니면 잡기 힘들었다. 대신 놀라운 효능이 있는 뱀이었다. 검은 바탕에 흰 무늬(黑質白章)가 있고, 풀과 나무에 닿으면 풀이 죽고, 사람을 물면 살아나지 못했다. 이것을 잡아 달여먹으면 중풍과 마비되는 병과 종기를 그치게 하고, 기생충(三蟲)을 모조리 죽이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소문이 퍼지자 왕명으로 한 해에 세 마리를 바치게 하되, 잡은 자는 군역과 세금을 면제한다고 했다. 그러자 고을 사람들이 다투어 뱀을 잡으러 산에 올랐다. 그중 장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3대에 걸쳐 땅꾼이었다.

때마침 지방 군수의 집에는 노모가 중풍에 걸렸다. 군수는 장가에게 독사를 잡아다 바치라는 특명을 내렸다. 장가가 산에 들어가 뱀을 잡는데 욕심을 낸 나머지 할아비가 뱀에 물려 죽었다. 할아비를 구하려다 아비도 따라 죽었다. 손자가 슬피 울며 뱀을 잡으로 들어가는데, 그는 발끝을 물려 발가락을 잘라내고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했다. 그런데 그에게 군 입영 영장이 떨어졌다. 물세도 나왔다. 가대의 거듭된 불행에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나올 것은 다 나왔다. 이를 면하기 위해 그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뱀을 잡으러 산에 들어갔다.

“청년은 집의 수입을 다 바쳐도 모자라고, 날마다 굶주리고 갈증 나서 쓰러지고, 그런 중에도 명을 받고 산에 들어갔다가 영영 나오지 못했소. 그 역시 뱀에 물려 죽었다는 것이오. 사람들은 역부러 뱀에 물려 죽었다고 합니다.”

정충신이 이렇게 결론을 맺자 신료들이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같잖은 소리라는 것이다.

“특정한 고을 사정을 일반화시켜서 대신들을 공격하지 마시오.” 한 대신이 나무랐다.

“마을에 살던 자가 열에 하나나 남고, 나머지는 죽지 않으면 정처없이 떠났다고 하오이다. 사나운 관리들이 와서 괴롭히니, 어찌 조정 신료들이 외면할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也)’고 했는데, 나는 일찍이 그것을 우리 땅에서 보았소이다. 세금 거두는 지독함이 뱀 잡는 것보다 심하다는 것을 어찌 모르십니까.”

“나가시오!”

“저 사람 언젠가는 치도곤(治盜棍: 조선조 때 곤장의 하나)을 당하겠군.”

그들은 정충신의 뒷일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투다가도 그들의 권익이 침해받으면 어느새 한통속이 되어 상대방을 제압하는 습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정충신이 당한다면 당한다고 보아야 했다.

정충신은 세도정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선조대부터 광해군, 그리고 지금 인조대까지 그것은 차츰 구조화되었다. 권력의 집중이 정치의 문란을 가져오니, 그 피해는 모조리 백성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뇌물을 바치고 관직을 얻은 관리는 그 대가를 농민에게서 염출해야 했으니 농민이 고달플 수밖에 없고, 민심은 사나워졌다. 민란이 예비되는 것이었다. 국가의 재정이 나라 살림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관리들의 배를 채우는 통로가 되어버렸다. 전란의 후유증을 수습하기도 전에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의 삼정(三政)은 국가의 중요 재정수입원인 세금을 왜곡시킴과 동시에 국가질서를 문란에 빠뜨리고 있었다. 또다른 난을 예비하는 것이다.

“정 공이 청백리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소. 그러면 그렇게 사시오. 근본없는 사람이 떠드는 것이 가당치도 않다고 다들 외면하고 있잖소?”

정충신의 한미한 가대를 비꼬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끼리 동맹을 맺고, 어떤 누구도 틈입해오는 것을 막았다. 세상이 발전,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제대로 된 가치체계와 도덕규범을 가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물며 지도층이 타락하거나 정의로운 행동규범을 갖지 못하면, 국가나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빤하다. 나라의 존속을 의심해보아야 한다. 왕이 다시 어전회의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엉뚱하게 물었다.

“전라도 군사가 왜 강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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