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기자현장-사후약방문

정다움(남도일보 뉴미디어부 기자)

최근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국립광주박물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박물관에서는 ‘대한민국 100년 역사를 바꾼 10장면’전시가 한창이었다. 전시관 중앙홀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투쟁을 볼 수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10 민주 항쟁 부스가 설치돼 있었다.

전시 관람 후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전시실 한편에서 소화기 1대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화기 손잡이에는 먼지가 가득해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제조일은 19년 전인 지난 2000년으로 확인됐다. 박물관에 온 목적이 전시 관람에서 취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박물관 1·2층을 1시간가량 둘러본 결과 광주박물관에는 할론 소화기 14대(1층 6대·2층 8대)가 비치돼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 일자는 지난 2000년부터 2002, 2007년으로 길게는 19년, 짧게는 12년이 지난 소화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박물관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이 소화기로 문화재를 지켜낼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본격적으로 취재에 들어가 보니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할론 소화기는 전자 설비에 사용할 수 있고, 약제 잔재물이 남지 않는 점에서 박물관·미술관 등에서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현행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할론 소화기 사용 기한이 규정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다.

광주박물관은 화재 예방기구인 소화기들을 제조된 지 20년째 된 제품을 비치하고 관리·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남도일보 보도<12월 13일 자 1면> 이후 다음날 해당 소화기들을 내후년까지 단계적으로 청정 소화기로 교체한다고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박물관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문체부의 ‘전국 박물관·미술관 운영현황 및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문체부 소속 23개 기관 중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74%인 17개 기관이 할론가스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재사고의 시작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된다. 국내 박물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청정 소화기가 도입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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