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새해엔 직장 민주주의의가 꽃피우길…
김나윤(광주광역시의원·변호사)

시간은 유수(流水)와 같다곤 하지만 벌써 2010년대도 지나가고 며칠 뒤면 새로운 2020년대가 시작된다. 군사정권부터 이어져온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87년 6월 항쟁에서 방점을 찍고 난 후 우리나라는 민주화에 진보적 성과를 이뤄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90년대의 외환위기를 겪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으로 여전히 직장 내 민주주의는 아직 먼 이야기인 것 같다.

30년 넘는 군사정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서열문화가 직장에 스며들었고, 이는 곧 직장 내 권위주의 문화를 양산하는 기초가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우리는 대한항공 한진가(家)의 갑질, 간호사들의 ‘태움’ 등 직장 내 괴롭힘 사건들을 심심치 않게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다.

계속되는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올해 7월 16일부터 직장에서의 괴롭힘의 개념을 명시하고 금지하여, 근로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호하고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개정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을 일컫는다. 먼저,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 외적인 범위에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고 있다.

또,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사용자가 사실조사를 하여 피해자를 보호하고 행위자를 제재하는 등 적절한 조치의무를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이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규율될 수 있도록 취업 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필수적으로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괴롭힘을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7월 16일부터 8월 16일까지 전국에서 총 379건의 진정이 접수됐다고 한다. 이는 하루 평균 16건이 넘어가는 수치이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서는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 근로자에게서 접수된 신고가 159건(42.0%)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300인 이상 사업장이 102건(26.9%)으로 뒤를 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체계적인 인사 관리가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한 3가지 요소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등인데 이러한 행위의 판단기준이 사실 매우 모호한 실정이다. 실제 괴롭힘이 발생하더라도 처벌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사건의 조사와 해결을 조직 자율에 맡기고 있고, 신고 후 즉각적인 처벌 없이 기업 차원에서 사내 취업 규칙에 정해진 대로 가해자를 징계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취업 규칙에 처분 규정이 없다면 사용자가 괴롭힘 사건을 방치해도 문제 삼을 수 없으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형사법보다 수위가 낮은 강요, 따돌림 등의 괴롭힘은 제도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피해자는 괴롭힘 신고 방법으로 노동조합이나 감사팀 활용이 있겠지만, 소규모 회사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 하는 것도 문제이다.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을 받기 위해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큰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는 변호사로써 개정된 법률안의 법률적 한계가 안타깝지만 점점 발전하는 민주인권의식과 사법 정책적 논의에 따른 그 결과물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이와 더불어 꾸준한 실태조사를 통한 피해파악과 피해자 보호를 위해 민간 상담 센터와 연계한 전문 상담 기능 확충, 상호 존중 직장문화 캠페인 등 인식개선과 법률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제도적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다가오는 2020년은 직장 내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원년이 될 수 있다고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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