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여고보 소녀회 창단한 장매성
흥학관서 강연듣고 민족의식 깨쳐
오빠 장재성도 광주고보 성진회 결성

오빠와 여동생이 함께 항일독립투쟁에 나선 장매성 남매 가족. 아랫줄 왼쪽(교복)이 오빠 장재성, 뒷줄 가운데(안경)가 장매성이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현 전남여고) 비밀결사조직 소녀회를 창단한 장매성(1911~1993)은 전남 광주군 광주면 금정에서 위로 오빠를 둔 외동딸로 태어났다. 회계공무원이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장재성, 장매성 남매는 집 가까이에 있던 흥학관에서 열리는 강연을 들으며 민족의식을 깨쳐나갔다. 광주고보 재학 중 학생비밀결사조직 성진회를 결성하고 학생운동을 지도했던 오빠 장재성의 영향을 받아 장매성은 민족의식이 남달랐다.

1928년 11월 초 광주사범학교 뒷산에서 장매성은 광주여고보생 11명과 함께 소녀회를 조직하여 독서토론을 하며 조국독립과 여성해방운동을 전개해나갔다. 학생운동을 벌이기 위한 비용 마련을 위해 광주지역 학생들이 1929년 9월 학생소비자조합을 결성하자 소녀회 회원들도 적극 참여하여 30원의 조합비를 냈다.
 

장매성.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대규모 학생시위가 일어나자 장매성, 박옥련, 장경례, 암성금자, 남협협, 고순례, 박계남, 박채희, 박현숙, 김금연, 김귀선 등 소녀회 회원들과 광주여고보생들은 남학생들과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소녀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광주여고보생들은 시위하는 학생들을 위해 부지런히 주먹밥과 음료수를 공급했다. 또한 의료품을 보급하여 일본중학생과의 격투로 심한 부상을 입은 광주지역 학생들의 응급치료를 도왔다.

학생시위 때 장매성은 일제의 감시망을 뚫고 대담하고 민첩하게 행동하여 흥학관에서 등사판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수 천 장의 격문 인쇄가 원활히 이뤄져 11월 12일 역사적인 2차 학생시위가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대규모 학생 시위로 광주지역 학생들이 대거 검거되고 장매성도 일경에 붙잡혀 갔다. 소녀회를 조직하고 학생시위에 적극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장매성은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장매성의 항일애국정신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손예빈 작가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