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96)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96)

왕이 영상 이원익에게 물었다.

“영삼 영감은 분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사람 좋은 그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다만 경호대장을 유비연으로 하여 세자를 모시고 가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상책 같사옵니다. 그러나 그 힘으로 감당해낼까 걱정이오니, 성상께옵서 중심을 잡아주셔야 하옵니다. 그러면 큰 걱정은 아니 들고, 대단히 아름다운 모양이 되겠습니다.”

이원익은 원로 정승답게 노회했다. 선조 대에 광해군이 분조를 맡았으나 왜적을 물리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두각을 나타내자 칭송하는 민심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러나 질투심 많은 아비 선조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못난 놈이 인기를 독차지ㅏ니 기분 나쁜 것이다. 한 하늘에 태양이 둘이 떠있을 수 없듯이 부자지간이라도 두 태양은 있을 수 없었다. 광해는 아비에게 공연히 시달린 나중에는 정신병이 날 정도였다. 그런 정서적 불안이 광해로 하여금 난군을 만들어버렸다. 이 점을 살펴보았던 이워익은 소현세자를 한 수 아래로 밟아주었다. 안심하고 임명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현세자는 광해의 소년시절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부족함이 없는 명세자였다.

“그 아이가 그래도 문자깨나 읽었소. 일단 맡겨봅시다. 그대들이 도와주어야 하오.”

신료들이 일제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고 동의했다. 소현세자 나이 열여섯 때의 일이었다. 아비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자 그는 12세 때(1623년) 세자로 책봉되었고, 지금은 미청년에 총기발랄한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1627년 정월 26일, 인조는 종묘의 신주를 받들고 대궐을 떠나 강화도로 피난길에 올랐다. 노량진을 지나 양천에서 하룻밤을 자고 27일 통진에 도착했다. 양 정승 윤방 오윤겸, 이판대감 김류, 예판대감 겸 찬성 이귀, 병판대감 이정구, 호판대감 김신국, 참판 최명길, 김자점 장유 등 조정 대신들이 왕의 어가를 따랐다.

지계최(池繼?)가 정충신의 반송방 집에 이르렀을 때는 저녁 어스름이었다. 오늘의 서대문구 안산 밑 냉천동이다. 옛 서대문교도소와 경기대학 사이의 마을인데. 지금도 개발이 지체된 곳이었지만 당시의 반송방은 빈촌이었다. 지계최는 정충신의 쓰러져가는 집을 보고는 크게 낙망했다. 도대체 명장의 집이 이렇게 누옥(陋屋)이란 말인가. 처마가 이마에 닿았고, 불쑥 들어서다 하마터면 이마를 찧을 뻔했다. 초가지붕은 몇해동안 이엉을 올리지 않았는지 짚이 삭았고, 그 위에 잡초가 시들어 쓸쓸하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계십니까.”

사립문 밖에서 소리를 하자 검은 움막 같은 방에서 정충신이 비스듬히 일어나 앉았다.

“뉘시오?”

“중군장 지계최이옵니다.”

“아니, 어떻게 여기를...”

지계최가 단박에 뛰어들어 정충신 앞에 넙죽 엎드려 절하더니 한동안 고개를 들 줄 몰랐다. 그는 엎어진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명장 어른이 이게 무슨 꼴입니까.”

“어허, 나는 괜찮으이. 일어나 앉게.”

지계최가 머리를 들고 그의 손을 잡았다. 손이 마르고, 눈은 푹 꺼져있었다. 변방에서 쓰러졌을 때 입이 틀어졌던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온 것만은 다행이었다.

“무슨 일인가?”

그러나 이런 마당에 정 장군 아니면 후금군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남이흥 장군이 전사한 뒤 전 부대의 대오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을 어떻게 말하랴. 이렇게 누추한 곳에 장수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움만 더해주었다.

“소인은 이렇게 금남 장군이 쓸쓸하게 지내시는 줄 몰랐습니다. 고향에선 금남 장군 정충신, 하고 하늘 높이 외치며 자랑으로 여겼는디, 이렇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슬프고 원통합니다.”

그는 정충신이 안현전투 일등공신 녹훈도 고사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정충신은 ‘대수장군(大樹將軍)’으로 통했다. 대수장군은 후한의 장수 풍이가 광무제를 도와 나라를 세우는 일등공신이 되었는데 서로 공을 다투는 것을 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노거수 뒤에 숨어 지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정충신이 그와 똑같이 인조반정 공훈 갈등을 일거에 해결해버렸다. 일등공신 훈책을 사양하자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된 것이다. 이때 지계최를 진무공신 3등에 올려주었다. 그는 이것을 이 은혜를 잊지 않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