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의 세상읽기

영혼 없는 문재인 팔이

 

 

4·15 국회의원 총선이 10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출마 예비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가 주말은 물론이고 매일같이 차고 넘쳐난다. 후보들과 이런저런 인연을 가진 사람들은 시간을 낸 발품도 발품이지만 성의 표시 봉투를 챙겨야 하는 일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럼에도 후보들은 얼굴 알리고 선거비용이라도 일부 보태려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후보들이 자신만의 가치나 정체성 홍보는 뒷전이고 누군가를 앞세워 그 인기도나 유명세에 얹혀 가는 선거를 치르려는 꼼수를 본다.

이른바 문재인 팔이 선거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30년 전 DJ를 소환한 느낌이다. 영혼없는 후보들이 너무 많다.

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창당 5개월밖에 안 된 김대중이 이끈 평민당은 소 선거구제에서 70석을 차지하며 제1야당으로 급부상했다. 광주·전남·전북 지역의 37개 의석 전부와 서울지역의 17개 의석을 차지, 전국구를 포함해 원내 제1야당이 된 것이다. 당시 호남은 DJ가 공천만 하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절대적이었다.

DJ가 1997년 12월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9년 8월 서거하기까지 20년간 호남은 DJ가 이끈 정치세력 천하였다. 시대적, 정치적 변수로 인해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등 당명을 바꾸어 달긴 했지만 국회의원 선거고 지방선거고 DJ 공천은 곧 당선이었다. 영호남으로 나뉜 철저한 지역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DJ는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고 DJP 연합과 이인제 변수로 인해 호남의 한을 푸는 대권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3김 시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면서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DJ당 만 찍었던 호남도 이제는 DJ 족쇄에서 풀려나나 했다. 그런데 3김 시대에는 그들이 지역주의에 기초했다면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지역주의에 진보와 보수가 가세하면서 국민을 갈라놓았다. 호남은 4년 전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안철수가 이끈 국민의당에 몰표를 주었고,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그것이 호남의 정서이고 민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몰려 다니는듯한 선거형태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오는 4월 총선에서 광주·전남지역 출마 예정자는 누구 할 것 없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산하기관 경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기껏 6개월에서 1년 반 남짓한 기간 동안 근무하고서는 평생을 함께한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최근까지 각종 여론조사 지표는 호남이 최대 지지기반이라는 점에서 ‘문 정부’ 근무 경력은 확실한 프리미엄이다. 내년 총선에서 광주·전남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와 산하기관 출신 인사만도 1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앞세운 선거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여당 예비후보들은 자체 경선이 본선인것 처럼 올인하고 있다.

자신들의 명함에 ‘문재인 사람’이라고 큰 활자로 찍고 청와대 근무 시 또는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명함을 채운다. 사진 한 장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한다. 30년 전인 1988년 4월 총선에서 DJ와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증수표처럼 포스터에 실었던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정작 왜 국회의원이 되려 하는지, 당선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자신의 지역구 현안에 대한 해법제시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재인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문재인 블랙홀이다. 문재인 팔이는 다가오는 국회의원 총선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도 극심했다. 그때는 탄핵정국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치른 첫 지방선거에서 호남에서는 일부 선거구를 제외하고는 문재인을 앞세운 민주당 후보들이 압승을 거두었으니 후보입장에서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호남도 특정 당만 보고 물표를 주는 지역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후보의 됨됨이와 살아온 궤적을 살펴보자. 정책과 공약을 보고 후보를 선택하자. 여당 후보든, 야당 후보든, 또는 무소속 후보든, 인물 중심의 선거가 돼야 한다. 그래야 호남의 미래,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