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99)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99)

대신들은 그러잖아도 시빗거리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임금이 몽진중인데, 이런 때 오랑캐와 짝짜궁하자고? 뇌가 있는 말이야? 이건 숫제 사람 붸를 내지르고 보자는 심뽀로 받아들였다.

“임진왜란을 이겨내고, 반정을 수습해 나라를 다시 만든 재조산하(再造山河)를 맨입으로 후금 오랑캐 입에 탁 털어 넣자는 수작이 아니고 뭔가.”

“그래. 정충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이건가? 오랑캐와 협상하자는 것은 똥막대기와 맞상대하자는 것이니, 예법의 나라가 힘께 똥막대기가 되자 이 말이군? 덱기 순, 근본이 없는 사람의 말이라 참견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건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군. 사람 말을 듣더라도 세상 만물의 이치를 아는 사람 말을 들어야지, 상것들 말을 들으니 세상이 어째 요지경 속 같으이.”

정충신은 모욕을 당한 기분이었지만 차분히 맞섰다. 그들과 말싸움할 건덕지가 못되는 것이다.

“적과 싸워서 이기는 것은 당연지사지요, 그러나 그보다 상수(上數)가 있소.”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윗수가 있다니, 말장난 하자는 거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그것이요.”

“장풍으로 집 쓰러뜨린다는 그런 소리 그만하시오. 우리는 상국인 명나라만 잘 따르면 안전하다고 했소. 상감마마께옵서는 명나라를 사대하는 것만이 나라의 정기를 바로 세우고, 세상 나아갈 이치를 바로 세운다고 하였소이다.”

“명나라 스스로 코가 석자인데 우리를 보아줄 힘이 있겠소? 외교로써 적을 굴복시키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당파와 당쟁으로 국가적 기운을 소모시켜 왔소. 서로 의논하고 조정하고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는 기술이 부족하오. 이것이 절대적으로 미흡하다 보니, 나라의 발전 또한 지체되었소이다. 싸우지 말아야 할 때는 싸우지 말아야 하고, 또 싸울 일이 있어도 대화로써 결과를 만들어내면 좋은 것이오. 싸워서 이기면 상대방이 무너지지만 나 역시도 피해를 보는 것이오. 당쟁과 당파싸움에서 배워야 할 것이 없소?싸우기 전에 적과 협상을 타진하는 일이 급선무요. 지금 이렇게 조용할 때가 적기요.”

후금은 신기하게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후금은 이쪽의 전력을 타진하면서 공격할 것인가, 협상할 것인가를 재고 있는 중이었다. 궁극적으로 명나라와의 대전을 준비중이니 미리 힘을 소진시키지 않겠다는 전략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정은 왕이 강화도로 피신할 때까지 화전(和戰) 양면에서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윽고 적병이 황해도 황주에 이르러 사신을 파견했다. 화친할 것을 요구했으나 사실은 항복 하라는 협박이었다. 지금 협상하자고 나서면 굴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협상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협상 조건은 첫째 압록강 이남 지역을 후금에게 양여할 것, 둘째 철산에 주둔한 모문룡을 잡아 보낼 것, 셋째 명나라 토벌을 위해 군사 1만을 지원할 것, 넷째 군량 2만석을 징발할 것이었다. 조정 신료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래도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소?”

“없소.”

정충신이 단번에 화를 내 대답했다.

“그럼 그동안 협상으로 나서겠다는 것은 헛소리였소?”

“그것도 적시라는 것이 있소. 즉 시간?상태?박자 등을 맞춰서 임해야 하는데 모든 기회와 시간을 놓쳤소. 그들이 요구 조건을 내걸지 않을 때 협상이라는 것이 존재하오이다. 지금은 아니올시다.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해올 때는 분연히 일어나야지요.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오.”

장만이 왕을 알현하고 와서 고했다.

“상감마마의 윤허가 떨어졌다. 정충신을 팔도부원수로 임명해 서북의 관병과 삼남지방의 근왕병을 통솔하는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나는 체찰사로서 정충신의 상사로 있으면서 군사의 진퇴 를 상의할 것이다. 문무백관은 여하한 논쟁을 중지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비상시국이니 여하한 논쟁도 중지하며, 어길 시 징계한다. 정충신 팔도부원수는 지금 당장 출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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