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00)
제6부 팔도부원수 1장 모문룡을 부수다(600)

출진 명령이 떨어졌지만 일부 중신들이 승진 연회를 겸해 환송연을 갖자고 제의했다.

“이 얼마나 값진 벼슬입니까. 훌륭하오이다. 상감마마께옵서 정 장수의 지략과 용맹과 지휘력을 일찍부터 알아보신 것입니다.”

“그렇지요. 팔도부원수란 전선의 총사령관인데, 어찌 그냥 보낼 수 있습니까. 입주 한잔 하셔야지요. 관기들도 새로 왔으니 객고도 한번 풀어야 하고요.”

“맞소. 장도를 빌고, 오직 자기 힘으로 입신출세한 정 장수야말로 자수성가의 표본입니다. 높은 신분사회의 벽을 뚫고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누구나 본받아야 할 거룩한 행적이오.”

어제까지만 해도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고 업신여기더니 왕의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이 팔도부원수라는 지위로 입증되니 그들은 어느새 표변하여 정충신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고 있었다. 이것을 모르는 정충신이 아니었다. 정충신은 이런 그들이 언제 표변해 할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것이 중앙 관서의 벼슬아치들의 행태들이고, 그렇게 해서 자기 자리를 보전한다. 정충신은 그들의권유를 묵살하고 말에 올랐다.

“본관은 팔도부원수로서 임무를 수행하고자 지금 전선으로 달려갑니다.”

그를 수행하는 병사는 고작 50명이었다. 오랑캐가 쳐들어오자 조선군은 거의 와해되어버렸다.

후금군은 그때 배신자 한윤을 앞세워 의주-안주-삭주-평산을 공략하여 조선의 군사력을 시험한뒤 화친하자고 협박하고 있었다. 그들이 쳐내려오는 동안 조선의 군사들은 놀라서 한결같이 메뚜기처럼 도망가버렸다. 적병은 마침내 황해도 황주까지 밀고 내려왔다. 생각보다 빨리 내려오자 여유를 갖고 화친하자고 떠보는 것인데, 조선은 여지껏 응답이 없었다.

“장군, 저것들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당장 쳐부숴야 할까 싶습니다.”

아민 휘하의 후금군 부관이 외쳤다. 아민은 송도에서 거둬온 인삼뿌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여유있게 말했다.

“적도는 이미 궤멸되었다. 다급하면 체하는 법이다. 척후병을 보냈으니 적진을 정탐해올 것이다. 그들의 첩보를 보고받은 뒤 결정하자.”

그러나 정충신은 후금군의 전략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막료장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후금군은 당장 쳐내려오지 못한다. 너는 연락병을 데리고 적병의 동태를 살피고 오라.”

“왜 적이 쳐내려오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저들이 저렇게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후금군은 조선반도 종심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고 있다. 명나라 원숭환 군대가 뒤통수를 칠 것이 두려운 것이다. 후금군은 조선 깊숙이 진격하다가 명나라가 뒤통수를 치면 고립무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역이용해야 한다.”정충신은 말을 달려 후금군의 주둔지를 비껴서 북으로 달렸다. 그때까지 군대가 규합되지 않았다. 기존 군사조직은 이미 와해되어 있었고, 백성들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정충신은 장계를 써서 왕에게 보냈다.

-신은 팔도부원수의 명을 받고 필마로 종군하여 체찰사 군중(軍中)에 있으면서 전선을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하에는 병력이라곤 없고, 오랑캐의 기세는 사나운 멧돼지가 치닫는 듯 드셉니다. 장만 장군은 두 삭 전에 송도를 떠나 강화도를 돕기 위해 행재소에 가 계시고, 신은 동쪽으로 향하여 군세가 다듬어지면 동서에서 적을 무찌르고자 합니다. 평산에서 신계로 향하고 있나이다. 이르는 곳에는 파발을 띄울 방편이 없어서 신이 진퇴에 관한 소식이 상달되지 못할까 걱정이옵니다. 신은 여러 가지 병법을 가지고 활약하는 바, 혹시 연락이 되지 않더라도 유언비어에 속지 마시옵소서.“

이렇게 다짐한 것은 하릴없는 조정 대신들이 혹 소식이 끊기거나 지체되면 예외없이 씹어내고 모함을 할 것 같아서 미리 명토박아두고자 하는 것이었다. 고을마다 다니며 모병을 하려면 무리가 따를 수 있고, 민원이 생길 수 있다. 그것을 최소화하려고 해도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그들이 투서를 할 수 있다. 모병에서부터 군량을 확보하는 데까지 그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데 어찌 민원이 없을 수 있겠는가.

정충신이 해서지방 골짜기 방방곡곡을 돌며 읍소하자 토산과 신계, 서흥에서 군사 1200이 모여들었다. 훈련되지 않은 이들 인력을 데리고 임진강 위쪽 여섯 개 여울을 나누어 방비하도록 조치 했다. 후금군의 턱밑이었다. 아군도 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들 병사들을 산을 하루 세 차례 밥먹으면 오르내리도록 하였다. 숫자가 많다는 것을 과시하는 한편으로 병사는 자연 체력을 단련하는 훈련이 되는 것이다.

그때 함경도 군사 3000이 정충신의 군막으로 들어왔다.

“장군, 팔도부원수 승진을 축수드리옵니다. 저희 군대는 장군께옵서 두만강 변경을 지키던 때의 부하들이옵니다.”

그들을 지휘한 중군장이 지계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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