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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02)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02)

제6부 팔도부원수 1장 모문룡을 부수다(502)

정충신의 첩서를 받은 최명길은 옳다구나 했다. 첩서는 백만 원군을 받은 것과 같았다. 그는 이조참판이 되어 비변사 유사 당상(조선시대 종친부, 충훈부, 비변사, 기로소 등의 사무를 도맡았던 당상으로, 당상 가운데 임금에게 직접 아뢰는 직)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정묘호란이 나자 후금과 화친하자고 의견을 냈다. 그런데 묵살되었다 강화(江華)의 수비조차 박약한 위험에 처했는데도 조정에서는 중신들이 방방 떠서 강화 문제가 제대로 발론되지 못했다. 후금과 맹약을 맺으면 부모국 명나라를 배신한다는 것이라고 대신들은 그런 주장을 한 자를 배역자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강화가 불가피했는데도 그들은 허장성세의 명분론에만 천착했다.

최명길은 당장 어전에 나가 상감을 아뢰었다. 그가 들어가자 중신들도 쪼르르 뒤따라 왔다. 최명길의 동태가 수상한지라 왕한테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는 것이다.

“상감마마, 정충신 부원수가 첩서를 보내왔나이다. 하루 빨리 오랑캐 아민이 요구하는 강화조약을 체결하라는 당부이옵니다. 대신 우리를 괴롭히는 가도의 모문룡을 쳐서 요양이나 변경으로 쫓아버리겠다고 하였나이다. 그러면 후금과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조가 곰곰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살고 보자는 길이렸다?”

“그렇사옵니다.”

그러자 중신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아니 되옵니다, 마마. 어찌 예법의 나라가 짐승같은 오랑캐들과 화의(和議)를 맺는단 말입니까. 당치 않사옵니다. 예법의 나라로서 체통이 있는 법이옵고, 부모국인 명나라를 배신하는 일이옵니다.”

“맞습니다. 최명길은 간도 쓸개도 없단 말인가?”

“천한 것의 말을 듣고 천한 것들과 화의를 맺는다는 것은 우리의 법도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말을 듣다 못한 최명길이 큰소리로 맞받아쳤다.

“천한 것이라니요? 말이면 다 말이요?”

“정충신의 출신이 한미한 것은 사실 아니요?”

“이렇게 사물을 옹졸하게 보다니! 정충신과 나는 백사 선생과 같은 문하요. 그리고 정충신 장수는 권율 장군의 오른팔로서 임진왜란을 이겨내고, 장만 팔도도원수의 최측근 막료로서 북방 변경의 오랑캐들을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협상력으로 물리쳐 변경을 안정시킨 장수요. 그런 장수를 한갓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고 해서 그의 업적과 혜안까지도 업신여기고 무시한다는 것이요? 당신들은 안현전투에서 정충신 전부대장이 승전고를 울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괄의 발바닥을 핥았을 거요. 그런데 출신 성분이 어떻다고 따다부따하는 거요? 정말 중신들의 수준이 정녕 이렇단 말이오?”

“허튼 소리 마시오. 우리는 이래봬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조백이 있는 학문의 나라 문무백관들이오. 그런 우리가 어찌 저런 하찮은 금수 무리들과 대화를 한단 말이오?”

“허튼 소리는 그대들이 하고 있소. 그대들에게는 흰 적이 있고, 검은 적이 있소? 적은 적일 뿐이요. 적이 창검을 들고 쳐들어오면 그대들이 맨먼저 가솔들 이끌고 도망갈 것이요. 그것을 막자는 것인데, 거부하다니 말 다했소?”

“다했소.”

“이런 고현, 강화도는 지금 오랑캐 군사가 주둔해있는 황해도 평산과는 불과 백리 안에 있소. 물길로는 이십리요. 그들이 한달음에 말을 달려 바닷가로 달려와 군선을 타고 강화도에 쳐들어오면 우리는 꼼짝없이 바닷물에 수장된단 말이오. 지금 강화의 수비가 빈약하므로 우리가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소. 저 자들이 우리 내실이 허약하다는 것을 알기 전에, 그래서 저들이 조금은 두려워할 때 화친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력을 끌어올리는 길이오. 서로 칼을 빼들기 전이 협상력을 높이는 절호이 기회란 말이오. 막상 칼을 빼들고 봤더니 별게 아니라면 그 후과를 무엇으로 감당하겠소? 목숨으로 감당할 작정이오?”

이러는 사이에 후금과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론자(主和論者)와 배격하자는 척화론자(斥和論者)로 진영이 바뀌었다. 그때 왕이 물었다.

“우리 군사력은 어떻게 되는가.”

물으나마나한 말이었다. 근왕병과 수비재 이삼백 명 가지고 일만의 기마와 마차, 3만의 훈련된 기병과 보병을 이끈 아민 부대와 대거리하다니, 입은 살았다고 나불대긴 하지만 애초에 비교가 안되는 것이었다. 말로는 만리장성을 못쌓나? 이러는 사이 마침내 후금국의 차사가 강화도 진해루까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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