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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04)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04)
제6부 팔도부원수 1장 모문룡을 부수다(504)

1627년 3월 3일 강화부의 임시 궁궐(행재소) 대청 마루에서 화친 조약 의식이 거행되었다. 이에 앞서 왕이 분향을 마치고 승지 강윤을 시켜 백관 이정구와 오윤겸 김류 이귀 신경진을 강화부의 서문 밖에 보내어 단을 쌓고 단위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행재소로 달려왔다


후금 차사의 요청에 따라 화친 조약을 맺는 의식이 거창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의식이 고약했다. 후금이 건장한 흰 말을 가져와 목을 찔러서 대야에 피를 받아 마시는 행사였다. 그런데 목이 찔린 말이 워낙 힘이 좋아 벌떡 일어나 날뛰는 바람에 행사장이 난장판이 되었다. 궁수가 나와서 말의 눈을 쏘아 죽인 뒤 다시 피를 받는데, 차사가 부정 탔다고 궁궐의 말을 요구했다. 다른 흰말을 가져와 목을 따는데, 임금이 피를 마시는 것을 피했다. 피로 나눈 형제의 맹약을 다짐하자는 것이지만 너무 엽기적인 것이다. 오히려 부정탈 것만 같았다.

“이보소, 차사. 아무리 그런다고 임금님이 입가장자리에 피를 흘리며 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좋게 생각해도 좀 징그럽지 않소?”

최명길이 차사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했다. 차사가 놀라더니 응수했다.

“아니, 이런 영광스런 의식을 외면하다니요. 우리의 노작(누르하치)께옵서도 정벌을 나가서 땅을 빼앗고, 전리품을 챙기면 꼭 이렇게 흰 말을 죽여서 뜨거운 피를 한 대야 받아먹었소. 얼마나 영광스럽고 상서로운 일이요. 그것이 힘을 솟구치게 하고, 용맹성을 보이는 근거가 되오이다. 일부러라도 마시는 판에 마다하시니 납득이 안가오. 이런 행사 때 마시고 나면 젊은 후궁들 대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오.”

“북경에 가면 북경의 법을 따르고, 한양에 오면 한양의 예법을 따르는 것이오.”

“거부하면 형제의 맹약을 차버리는 것으로 알겠소.”

지켜보던 왕이 곁의 중신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의 민심과 병력이 과연 막강한 적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미 그렇지 못하여 화친을 하는데 어찌 소소한 형식에 매일 것인가. 내 마땅히 임하리라.”

왕이 피가 가득 넘치는 대야를 가져오도록 명했다. 그러나 최명길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천하에 없는 군왕이 비적떼들처럼 말의 피를 벌컥벌컥 마신다? 안될 말이었다.

“차사, 지금 상감마마께옵서 상중이올시다. 상중에 죽은 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우리 법도는 물론이요, 여진의 예법에도 어긋날 것이요.”

기발한 기지였다. 궁궐의 궁인들은 8백명이 넘었다. 행재소로 이동해 와서도 200인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이중 상을 당한 사람이 한달에 한두 명은 반드시 나왔다. 그것을 끄집어내 거부하는 데야 명분이 안설 수 없다.

“그건 그렇군요.”

차사도 뒤로 물러났다. 대신 요란하게 자축 행사를 벌이자는 것이었다. 명나라에까지 소식이 닿도록 하자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조선과 맹약을 맺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다고 보는 것이었다.

강화조약 체결 문서는 승지 강윤이 낭독했다.

-조선국은 이제 정묘년 갑진월 경오일 금국(金國)과 서약하노라. 우리 두 나라는 이미 강화하기로 정하였으니 이제부터 두 나라가 각각 서약을 준수하여 국경을 보전할 것이다. 만일 조선국이 금국과 원한을 맺어 화친을 배반하고 군사를 일으켜 공격한다면 곧 하늘이 화를 내릴 것이요, 만일 금국에서 불량한 마음을 일으켜 화친을 위배하고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온다면 또한 하늘이 화를 내릴 것이다. 두 나라의 임금이 각각 착한 마음을 지키면 함께 태평 세상을 누리리라.

뒤이어 후금의 서약문이 낭독되었다.

-대금국의 2왕자(누르하치의 차남) 귀영개(다이샨)와 조선 국왕은 서약하노라. 우리 두 나라는 이미 강화하였으니 이제부터 한 마음으로 뜻을 같이할 것이다. 조선국에서 만일 금나라와 원수를 맺어 병마를 정비하고 새로 성을 쌓아 마음가짐이 옳지 못하면 즉시 침공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이왕자가 불량한 마음을 먹어도 하늘이 화를 내릴 것이다. 두 나라의 두 왕이 같은 마음, 같은 덕으로써 공평한 도리를 같이한다면 하늘이 보우하사 반드시 복을 얻으리로다.

누르하치 대신 다이샨이 서명자로 나선 것은 누르하치가 노쇠했기 때문이었다. 항간엔 벌써 죽었다는 말이 돌았지만, 그들은 이를 숨겼다.

강화조약 체결 기념으로 후금의 포로된 자들을 석방해 유해 진영에 보냈다. 이중에는 모문룡 군대에서 포로로 잡힌 자들도 포함되었다. 의금부는 여진족과 북경인을 같은 중국말을 한다는 이유로 모두 후금군의 포로로 인식해 석방한 것이었다. 석방된 모문룡의 군사들이 북을 향해 달려 모문룡이 주둔하고 있는 철산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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