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내 삶을 바꾸는 문화
“어릴 적 포기했던 작가의 꿈을 이루다니…”
(3)문화전방 마을학교
광주 남구 월산동 달뫼마을
‘달할매+달줌마’들 보금자리
최고령 90세부터 막내 40세까지
반세기 뛰어넘는 삶의 역사 공존
시니어세대 문화예술 꿈 영글어
미술 전시회도…소통 역할 톡톡

문화전방 마을학교 활동 모습. /문화전방 제공
문화전방 마을학교 작품.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70살 넘은 나이에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요.”

자식과 가정을 보살피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했던 어머니 세대들에게 문화는 사치이거나 자신과 거리가 먼 다른 세상의 일쯤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 ‘달뫼마을’. 이곳에 위치한 5평 남짓의 작은 작업실에선 어머니들, 시니어 세대의 문화 선도라는 야심찬(?) 꿈이 싹트고 있었다. 이곳에선 하얀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세계를 담는 미술가가 될 수 있고 때로는 후배세대에게 인생 경험을 나누는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달할매+달줌마’로 불리며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의 보금자리, 여기는 ‘문화전방’이다.
 

달할매달줌마 문화전방 입구.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문화전방 마을학교 활동 모습. /문화전방 제공

◇설렘과 도전…나도 할 수 있다

2017년부터 시작된 문화전방 마을학교는 현재 ‘달할매 15명+달줌마 15명 총 30명의 여성들’로 이뤄졌다.

‘○○엄마’. 세상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달할매+달줌마’ 역시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이름이 익숙했다. 평균나이 70세인 이들은 항상 나는 뒤로한 채 긴 세월을 보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듯 했다. 마을학교는 가슴 속 묻어둔 자신의 이름을 꺼내보는 시간이었다.

이에 마을학교의 첫 목표도 내 자신 찾기였다. 아름다운 나-소품만들기, 자화상 그려보기 등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잘 하는지 살펴봤다.

처음부터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하긴 쉽지 않았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면 어색함에 손사래를 치며 피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조급해 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지기부터 시작했다. 시청자미디어센터 같은 여러 기관과 연계해 기상캐스터 체험, 요리봉사 등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 넣었다. 그 결과 점점 자신감을 찾기 시작했고 지난해 5월 이강하미술관에서 열린 5·18주제 전시회에선 한 명의 시민작가로서 모두 참여하는 쾌거를 이뤘다. 교육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변했다. 달할매+달줌마들의 성화로 연간 23회로 예정돼 있던 교육 일정도 올해는 35회로 늘려 진행됐다. 이들에게 문화는 자신을 찾는 통로였다.

달할매 박옥자(71·여)씨는 “항상 내 새끼, 내 가족이 먼저였지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잊고 있었는데 마을학교를 하면서 자신을 찾게 된 기분”이라며 “지난해엔 내가 찍은 사진으로 달력도 만들고 손주들에게 자랑도 했다. 스스로 하나씩 이루다보니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전방 마을학교 활동 사진. /문화전방 제공
문화전방 마을학교 활동 모습. /문화전방 제공

◇문화를 통한 세대 간의 교류

문화전방 마을학교는 ‘달할매+달줌마’라는 주제처럼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최고령 90세부터 막내 40세까지 반세기를 뛰어넘는 삶의 역사가 함께한다.

달할매는 사라져가는 마을의 역사와 생활의 경험을, 달줌마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신문화를 알려주며 일상 속 재능을 서로에게 전해준다.

활발한 재능 나눔 속 정서적 공감 또한 자연스레 피어나게 됐다.

서로 다른 성장배경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해력과 포용력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가족으로서의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장소 또한 이들의 ‘소통방’으로 항시 사랑받으면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 창의학교와 연계해 연 1회 아이들과 운동회를 펼침으로써 세대 교류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문화가 지닌 치유의 힘은 같은 공간 속에서 분절된 삶을 살았던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계기이자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세대 간 징검다리가 됐다.
 

문화전방 마을학교 활동 모습. /문화전방 제공

◇‘문화 선도’의 꿈

문화전방 구성원들에게 “자녀와 주변에도 문화가 주는 좋은 기운을 전파하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겼다.

지난 3년여 동안 내·외적 활동을 펼치는 과정을 통해 겪은 놀라운 변화가 ‘문화선도’라는 포부를 심어준 것이다.

이에 문화전방 마을학교는 달할매+달줌마들이 직접 찍은 마을 사진을 마을기록물로 활용하거나 마을센터·학교 등과 연계해 이들이 만든 소품을 기부하고 강사활동참여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또 남구구립미술관, 광산구 소촌아트팩토리,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광주 내 크고 작은 문화예술기관들과 협력해 달할매+달줌마만이 가진 문화자원을 홍보·활용해 마을학교를 곳곳에 활성화할 방침이다.

문화전방 마을학교는 마을공동체 회복을 넘어, 생활 곳곳에 문화예술교육이 자리할 수 있도록 하는 ‘뿌리’역할을 꿈꾸고 있다.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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