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이한범 작가 개인전
밝고 세련된 색채·만화 스타일…‘그림보는 재미’ 흠뻑
광주 일곡도서관 갤러리서 23일까지
12지 동물상 ·풍자화 등 전시
북경 레지던시 활동중 작품도
마치‘애니메이션‘을 보는듯
관람자들 쉽고 편안하게 다가가

화가 이한범 개인전이 광주 북구 일곡도서관 갤러리에서 오는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한범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이한범 개인전이 광주 북구 일곡도서관 갤러리에서 23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한범 작가(36)가 지난 5년 동안 종이에 먹,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12지 동물, 중국 풍물, 화폐에 대한 단상을 표현한 그림들과 자화상, 정치 풍자화 등 모두 49점으로 구성됐다.

이 작가로서는 2015년 베이징 99미술관에서의 개인전 이후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자 그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하며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풀어내는 새로운 도약의 의미를 갖는 전시다.

이 작가는 미술이론을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공부하면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시 작품들은 관람자들에게 복을 기원하는 12지 그림들과 귀여운 앵무새, 작가 자신을 보이는 그대로 그린 자화상, 재운의 화신으로서의 관운장, 중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모택동과 시진핑의 모습 등 흡사 미국의 팝아트와 같이 그림과 내용이 일치한다.

이한범 작 ‘2020년 쥐’

생업으로 번역을 해온 이 작가는 현대미술 중 눈으로 볼 수 있는 작품과 작가가 주장하는 그 내용이나 의미 사이에 간극 혹은 불일치가 있는 경우들에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그는 다른 언어로의 번역도 원문에 충실해야 하는데, 하물며 한 작품의 제목과 의미, 그 시각적 구성은 당연히 서로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이 점에서 전시는 진실함이 그 주제라 볼 수 있다. 소와 호랑이 등 12지 동물과 자화상을 비롯한 인물상의 작품을 보면 작가가 전달하려는 의미를 금새 알 수 있다. 특히 애니매이션(만화) 기법과 밝고 세련된 색채로 동물상과 인물상들의 특징을 다소 과장하거나 의인화해 편안함과 유쾌한 느낌을 준다.

형식적인 면에서 이 작가의 작품 특징은 살아있는 표정 묘사의 빼어남이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인물과 쥐는 평온한 표정이 돋보이고, 빨간 두건을 두른 채 깃발을 들고 보는 이를 향해 미소를 짓는 ‘의병 원숭이’의 주인공은 국난 중에도 인간성을 유지하는 이른바 ‘광주 정신’을 그 표정으로 나타낸다.

작가가 의병 중에서도 특히 호남의 의병들을 생각하고, 이제는 호남 지역이 그 의병의 역사만큼이나 경제와 문화와 같은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성취를 이룩하기를 기원하며 그린 작품이다.

그 옆의 수탉은 비록 닭이지만 리더의 기품과 품위를 갖춘 자세와 표정으로 모든 생명의 존엄을 가리킨다. 의인화된 개, 돼지와 원숭이는 맑고 밝은 표정들로 인간의 가장 맑은 품성을 상기시킨다.

이한범 작 ‘의병 원숭이’

전시장 입구의 맞은편 벽에선 캔버스에 수탉이 표현된 100호 크기의 그림 2 점과 50호 크기의 그림 1 점이 나란히 관람객들을 반긴다. 멋진 스포츠카를 탄 젊은 닭은 보는 이들도 자신과 같이 잘 나가시라고 말하듯 손을 흔들고, 팔짱을 끼고 정면을 응시하는 닭은 그 야무진 생김새만으로도 복을 불러올 것만 같다.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있는 닭은 그 기세로 봐서 안 봐도 홈런을 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람객들이 홈런과 같은 성공을 생각하며 원하시는 일들을 성취하시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3 점 모두 닭띠 해를 맞이해 복을 기원하며 그린 그림들이다.

그 옆으로는 화난 듯 보이는 표정의 인물이 있는데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문재인 대통령에게 “너 돈 있냐?”고 묻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너 돈 있냐?”는 작가의 학창 시절 정도에 일부 아이들이 자신보다 왜소한 아이들로부터 용돈을 갈취할 때 흔히 썼을법한 표현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상황이 딱 이 정도로 요약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한범 작 ‘화폐 단상’

화폐에 대한 단상들이 표현된 먹그림 5 점도 볼 수 있다. 미국에는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는다”는 관용어가 있는데, “누구는 땅 파서 장사하는 줄 아느냐”는 한국식 표현과 같이 돈은 노력을 통해 벌 수 있는 것임을 뜻한다. 작가는 그 말을 이용해 “돈은 나무에서 자라지 않지만 나무와 빌딩, 도시 전체가 돈 위에서 자란다”며 오늘날의 경제에서 화폐가 갖는 중요성을 표현했다.

서로 악수하는 다윗과 골리앗 작품도 인상적이다. 전혀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악수하는 모습은 대립과 반목,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사회의 화해와 협력을 희망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있다.

이 작가는 2014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레지던지 활동을 했던 베이징 99미술관에서 그린 먹그림들도 전시하고 있다. 경극 배우의 분장을 한 남자, 중국인 얼굴의 특징들, 삼국지의 관우와 마오쩌둥, 차 문화, 경극 배우, 시진핑 주석, 중국의 부상하는 힘과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작가의 모습 등이 그 소재들이다.

그가 애니매이션 스타일의 작품을 하게 된 까닭은 뭘까. 그는 미술 비평 공부를 해오면서 “미술은 너무 어렵고 아는 게 없어서…”라며 미술작품 감상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다. 그래서 미술이 일반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전통 회화와는 다른 색다른 스타일을 추구하게 됐다. 쉽고, 편안하고, 재밌게 감상하면서 힐링하고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미술작품이 어려우면 관람객들이 외면하거나 금방 고개를 돌립니다. 편안하게 보면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역에서 활동중인 청년작가가 경자년 새해에 부르는 희망가(歌)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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