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07)

제6부 팔도부원수 1장 모문룡을 부수다(507)

“복남이 에미나이야, 이게 무슨 일이우까. 고래, 그동안 어드메 갔드랬니? 간나(아이)들 놔두구 어드메 갔드랬니? 이게 무슨 세상이우까. 옆집 에미나이가 쌍간나 새끼들한테 잡혀갔다구 날레 뛰어와서 말해주었디. 한데 내가 한 수 늦었댔디. 미안하우다 미안하우다. 이보라우, 말 한마디 해보라우. 억울해서 말문이 막힌다 했네? 고래, 내가 당신 원수 갚아주디. 암, 고래야디. 관아 놈들, 검부레기디. 낫으로 가슴팍 찍어버리문 끝나는 거이디. 당신이 없는 세상, 나두 살 생각이 없디. 아이쿠 내가 물들여준 붉은 봉새(봉숭아) 손톱에 곱게 남아있댔군. 고런데두 에미나이는 말이 없구나. 아재비(아저씨)요, 에미나이 좀 살려주구레. 흐흐흐...”

그는 정신이 돌아버렸는지, 이상하게 웃다가 울다가 하다가 찰방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낫으로 그의 가슴팍을 찍었다.

“니놈들이 더 나쁘디. 오랑캐 간에 붙구, 쓸개에 붙구. 그러구서 선한 백성 쥐어짰디. 에라이, 개망나니놈아!”

찰방이 고꾸라지고, 그의 낫은 어느새 빨갛게 물들었다. 군교들이 달려들어 장정을 제압해 포승줄로 묶었다. 그가 발악적으로 소리질렀다.

“아재비요, 억울한 사람을 왜 잡나. 아재비요, 에미나이 이팝 한 그릇 못먹고 갔소. 저 수캐들에게 오마니, 어르나(어린아이), 처자들이 다 당하고 살았소. 노비의 아내나 자식은 축생이었을 뿐이디요, 흐흐흐.”

정충신이 막료장에게 명했다.

“저 자를 영창에 집어넣어라. 그리고 여인네는 정중히 장사를 지내라.”

군교들이 눈이 뒤집혀 길길이 날뛰는 장정을 영창에 집어넣었는데, 다음날 그는 허리띠를 풀어 천장에 매달아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비감에 젖어있던 정충신이 무장회의를 소집했다. 산성을 수비하던 북문 수비대장이 달려와 보고했다.

“장군, 모문룡의 군사들이 용골산성의 첩서를 갖고 달리던 군교를 살해하고 첩서를 가로챘소이다. 기밀이 새면 큰 일이오이다. 그리고 안융창에 있던 난민을 공격하여 민가를 불태우고 백성을 죽이고, 아녀자를 체포해 갔습니다. 정주로 피난 갔던 조선 백성 천여명을 공격하였으며, 이중 물에 뛰어든 백성 3백여 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죽었다 합니다. 병력을 풀어 모문룡 군의 행악을 막아야 합니다.”

“사실이렸다?”

“그렇사옵니다.”

“그렇다면 당분간 기다려라.”

“왜 그렇습니까.”

“기다려라.”

“백성들이 죽게 되었는데 기다리라니요?”

정충신이 대꾸하지않자 수비대장이 열을 올려 소리쳤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대하며 입을 벌리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밤송이가 떨어져 눈탱이가 밤탱이되면 어쩌실려고요?”

“모문룡은 어젯밤에 이곳에 있었다. 그자는 아군 진영을 교란시키기 위해 이름을 여러개 사용하며 역내를 분탕질하고 있다. 그놈이 실로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일장 연설했다.

“민심이 흉흉한 관계로 왈패, 악소배들이 귀성 정주 영변 철산 안주 도처에 출몰하고 있다. 유부녀 겁간하는 검괘, 살인을 저지르는 살괘들도 있다. 사악한 이자들이 모문룡 이름을 도용하는데, 그렇다면 그들도 모문룡이 아니고 무엇이냐. 이것들부터 잡아들여라. 고을의 수령들과 짜고 창기(娼妓)를 부리고, 투전판, 은광을 장악해 돈을 갈취하고, 토착 세력과 결탁해 특권 기득권층을 형성해 나라의 개혁을 막고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지방 수령과 중앙의 요로와 줄을 대고 이권에 개입하니 나라의 기강과 질서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이런 반칙들이 세상을 지배하니 나라의 정의는 무너지고, 백성들은 날로 신음하고 있단 말이다. 백성들이 후금 오랑캐나 모문룡군이나 지방 수령이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탄식하고 있다면 나라라고 할 것이 없다. 이런 극도의 허무주의가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썩은 것부터 도려내야 한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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