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무죄 선고…남겨진 과제는

이번 판결로 재심 청구 잇따를 전망

희생자 구제 위한 특별법 제정 시급

지역민 참여 이끌어내는 것도 과제

여순사건 연구에 찬착해 온 주철희 박사가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재심 무죄 판결 후 당시 판결 내용이 담긴 명령서를 설명하고 있다./사진= 여순사건재심대책위 제공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군사재판에 의해 사형당한 민간인에게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여순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72년 만에 국가의 잘못을 인정한 역사적인 선고였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특히 고 장환봉 씨와 함께 희생된 439명의 피고인들에게도 무죄 선고를 할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당시 희생된 민간인도 구제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번 사건만 해도 7년 넘게 걸린 재판 과정에서 당초 재심을 청구한 유족 3명 중 2명이 사망해 결과를 보지 못했다.

이번 무죄 판결로 당시 군사재판을 통해 사형당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재심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지리한 소송 절차를 밟지 않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여순사건 연구에 천착해 온 주철희 박사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호남지구 계엄사령부의 9차까지 열린 군법회의에서 민간인 3천715명이 재판에 회부됐으며 이 가운데 2천68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장씨는 3차 군법회의에서 616명과 함께 재판에 넘겨졌고 46명이 사형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주 박사는 “피해자 유족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면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이번 무죄뿐만 아니라 군사재판을 통해 즉결처분 받아 희생된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사법부가 준엄한 심판을 한만큼 이제는 입법부, 행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는 정치권은 물론 지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시민단체나 유족의 바람과 달리 여순사건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여전히 저조하기 때문이다.

실제 전남 동부지역 7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범국민연대가 지난 2018년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아 추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는 6천645명이 참가하는 초라한 결과만 남기고 무산됐다.

정치권과 지역사회에서는 한목소리로 특별법 제정 촉구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 운명을 같이 한 제주 4.3 사건과 연대해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미 특별법이 제정된 제주 4.3사건이 여순사건의 계기였던 만큼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 비극으로 꼽히는 두 항쟁이 연대해 특별법 제정의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씨의 딸 장경자(75)씨도 선고 직후 “뒤늦게나마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 기쁘다. 모든 분들이 무죄를 받기를 희망한다”며 “여순사건 유족들의 완전한 명예회복과 당시 희생자들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한편 여순사건 특별법은 16대, 18대,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제정되지 못했고,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5개 발의돼 있다.그러나 여전히 계류 중이어서 이번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될 위기를 맞고 있다. 동부취재본부/장봉현 기자 coolman@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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