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09)

제6부 팔도부원수 1장 모문룡을 부수다(509)

한 놈이 불쑥 앞으로 나오더니 무릎을 꿇었다.

“장수 나리, 소인은 청석골 사는 영바우입네다. 궁수와 사수로 활약해 왔습네다. 장군 나리께서 훈계하시니 제가 철없이 살았음을 알았습네다. 장군 나리처럼 너그럽게 말씀을 해준 어른들이 없었습네다. 고을 사람들은 벌레 취급하거나 우리가 무서워서 도망갔댔디요. 관과에서는 비렁뱅이나 범죄자 취급하고, 없는 죄도 덧씌워서 밟아버리고, 그 대가로 승급을 하고 영전을 했댔디요. 나라의 녹을 먹는 자나 저희 패거리나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습네다. 에먼 백성들 짓밟고 착취하고, 저희 소인배들 또한 백성들에게 행악(行惡)을 저지르고 주머니를 털었습네다. 나약한 여자들을 납치해 싼 값에 팔아넘기고 물건 취급했댔디요. 나리 말씀 들어보니 저 소녀가 얼마나 몸과 마음을 다쳤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네다. 소인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소녀를 망친 자들을 뿌리를 뽑겠습네다. 두 번 다시 이런 행패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네다. 백성들을 괴롭힌 자들을 복수하겠습네다.”

정충신이 한심스런 시선으로 영바우를 건너다보았다.

“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보다 더큰 복수를 할 것이 있다.”

“무엇입니까.”

“사람 대접을 받으려면 모문룡의 목부터 따오너라. 그렇게만 한다면 내가 군교로 발탁할 것이다. 군교는 훗날 장수가 되는 길이니라.”

“나리, 소인을 사람으로 써먹겠다니 감사합니다.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군이 되었다. 부족한 군사 머리를 채우니 군사력은 조금씩 보강이 되었다. 군교들이 그들을 매일 훈련장에 내몰았다. 산을 타는 놈들이라 체계를 갖춰 훈련을 시키니 산짐승처럼 날쌔게 움직였다. 어느날 정충신이 그들을 세워놓고 말했다.

“모문룡의 처소를 아는 자가 있느냐?”

한 놈이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인네를 손가락질했다. 자태가 아름다웠다.

“저 여인네가 압네다.”

그러자 여인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선뜻 대답했다.

“쇤네와 함께 잠을 잤나이다.”

여인은 집으로 쳐들어온 모문룡 군대에 대항하던 남편과 가족이 꼼짝없이 죽게 되자 이들을 살리는 조건으로 붙들려갔다. 모문룡에게 한달 가량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남편이 호되게 굴었다.

“모 대장이 그렇게 좋더냐?”

번연히 붙들려가서 시달리다가 온 것을 알면서도 남편은 질투심으로 술만 먹으면 화를 내고 아내를 두둘겨팼다. 자신의 희생으로 가족을 지켰는데도 정조를 빼앗겼다고 해서 매타작이니 쇤네는 견디다 못해 산적들이 우굴거리는 산속 소굴로 들어가버렸다. 철산군 알산이었다. 산이 알처럼 둥글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깊숙이 들어갈수록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했다. 산의 정상에 서면 가도의 섬들을 한 눈에 조망해볼 수 있어서 수비 방어와 공격로의 출발선으로 삼기 좋은 요새였다. 그런데 그곳을 산적들이 선점해버린 것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해골이 아니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악명높은 곳을 그들이 차지해버리니 산적들의 위세는 웬만한 군사 못지 않았다.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만 어쩌겠느냐. 세상의 인습이 그러니 여인들이 못살 일이 생겼다. 그래서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우리가 여기 서있는 것 아니냐. 쇤네는 앞으로 내 곁을 지키라.”

“쇤네, 명을 따르겠나이다.”

“모군의 거처지와 모 대장 거처지를 아느냐?”

“압니다.”

“그 자를 잡아들이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그러자 영바우가 대뜸 나섰다.

“모문룡을 치다니요? 지금 여진족의 군대가 덤벼들고 있습네다.”

후금군의 후속 주력 부대가 강남산맥의 주산인 천두산, 망일산, 입봉에 진을 친 뒤 침투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후금군의 진출 경로는 의주 용천 정주 영변으로 잡았는데, 그중 1진은 벌써 황주와 송악까지 남하했다. 그 후속 2진, 3진은 선천, 귀성, 곽산으로 줄줄이 내려와 들판의 요소요소에 군막을 치고 집결지로 삼더니 공격로와 포위선을 확보해놓고 알산을 넘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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