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 전 선인들이 전하는 삶의 지혜들
■한 번은 읽어야 할 우리 고전 명수필
이규보 이인로 이제현 권근 등
고려·조선시대 대문장가들
철학적 사유와 해학, 익살 담아
선인들과 하나되는 즐거움 선사
김영석/문학의숲/15,000원

“사람에게 밀침을 받더라도 그 사람에게 불만을 갖지 않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면 움직이고, 부르면 가고, 행할 만하면 행하고, 그칠 만하면 그친다. 그러므로 옳은 것도 옳지 않은 것도 없다. 너는 빈 배를 보지 않았느냐? 나는 그 빈 배와 같다.”-이규보 돌의 물음에 답하다 中-

고려시대 명문장가인 이규보, 그가 지은 시풍은 당대를 풍미했다. 먼지 낀 거울을 보는 거사, 개의 목숨은 귀히 여기고 이의 목숨은 하찮게 여기는 손님, 통찰력 가득한 관상쟁이, 광인보다 더 광인 같은 벼슬아치들에 대한 글들을 통해 삶의 모순을 지적한다.

“홍순은 문득 거문고에 신이 붙어 있다는 이순의 말을 떠올리고서는, 급히 등불을 밝히고 귀신을 내어 쫓는다고 알려진 복숭아나무 회초리를 들고 거문고를 마구 후려쳤다. 그렇게 되니 복숭아 회초리로 얻어맞은 거문고가 더욱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이제현 신이 붙은 거문고 中-

원나라까지 널리 이름을 떨쳤던 고려 말 대학자 이제현은 재치와 해학의 대가다. 생명을 구해준 사슴과 거북의 보은, 남매의 유산 다툼을 현명하게 해결한 판관, 내기 바둑에서 잃은 거문고를 재치 있게 되찾은 일, 종기로 고통 받던 조간을 벌떡 일으킨 김순 등 우화 같은 이야기들로 당시에 사회상을 반영했다.

이처럼 우리의 고전 수필은 그 내용이 다양하다. 심오한 사상과 철학적 사유를 논하기도 하고, 삶의 무거움을 넘기는 익살과 해학이 담겨 있기도 하다. 또 권력자나 종교인의 위선에 대한 조롱, 도의 경지를 추구하는 마음가짐을 말하기도 한다.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김영석 배재대 명예교수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 문장가들의 수필 중에서 주옥같은 작품만을 모아 엮었다. 여러 고전들 속에서 우리가 읽어 볼 만한 수필을 골라 쉬운 문장과 정확한 번역을 통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책에는 선인들의 심오한 철학적 사유와 해학, 익살등 다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고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우리 고전의 향연이 펼쳐진다.

고전의 진수는 고려말~조선초 유학자인 권근의 문장에서도 잘 읽혀진다. 권근은 ‘세상은 하나의 큰 물결’수필에 “인간이 사는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요, 사람의 마음은 또한 하나의 거대한 바람이기 때문에, 내 한 몸이야 거칠고 끝없는 물결 위에서 표류하는 한 척의 작은 조각배와 같은 것이라오”고 적으며 겸손과 청렴결백의 가치를 전했다.

권근은▲ 미리 조심하고 경계하기 위해 배를 타는 노인 ▲부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띠 지붕의 집에서 사는 김자정 ▲소를 타고 자유로이 산수를 즐기는 이도주 ▲자신을 닦고 다듬어서 발전해 나가고자 자를 자옥이라 지은 성석용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교훈을 강조했다.

책을 읽다보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대 문장가인 이규보, 이인로, 최자, 이제현, 권근, 성현, 김만중, 박지원의 글을 통해 현재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고민과 갈등, 인간관계 들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결연히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삶의 지혜를 발견한다. 수백 년 전에 살았던, 대 문장가라고 일컬어지는 옛 선인들과 하나가 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아리 기자 h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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