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18)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18)

“이 새끼들이 우리 지도자를 죽였다! 그분 신분이 누군 줄 아느냐? 바로 슈르하치 장수의 큰아들이다.”

적의 척후대장이 아군 진영을 향해 창을 휘두르며 외쳤다. 정충신 부대의 막료장이 나섰다.

“적이면 적이지, 우리가 그의 신분을 살피고 죽이느냐? 슈르하치는 또 뭐냐?”

“누르하치 폐하의 둘째 동생이다. 니놈들이 그의 아들을 죽였단 말이다!”

누르하치에게는 형제가 5명, 여동생이 3명이 있었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복형제는 둘째동생 슈르하치와 넷째동생 야르하치였다. 슈르하치는 지모가 있고, 용기와 힘이 있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인간미가 있었다. 그래서 형 못지 않은 인기를 얻고 있었다.

건주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이들 형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며 전공을 세웠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여진부족의 추장들이 누르하치보다 슈르하치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

이때 갈수록 누르하치의 위협을 받고 있는 명나라는 아직 지배권을 잃지 않은 틈을 타서 누르하치와 그의 동생 슈르하치에게 똑같이 도독이란 벼슬을 내렸다. 건주여진의 내부에 일시에 두 명의 도독이 생긴 것이다. 명나라는 그러면서 이도독(二都督) 슈르하치의 용맹을 지원하기 위해 명군과 싸움을 할 때 명군을 자주 후퇴시켰다.

어느날 누르하치가 전선에서 돌아온 슈르하치를 게르에 가두고 초병을 세운 뒤 먹을 것을 제공하지 않았다.

“저노무 새끼가 알고 보았더니 명나라 간자였더구만? 명나라 군사들이 나와 동생을 이간질 시키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 새끼가 간자였어. 용서할 수 없다.”

누르하치는 이렇게 뒤집어 씌워서 슈르하치를 죽였다. 누르하치는 명나라의 이간질에 동생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러나 항간에서는 형이 동생을 투기한 나머지 죽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나라에 태양이 둘일 수 없지.”

얼마 후 군사들은 그렇게 체념하고 누르하치에게 다시 줄을 섰다. 누르하치는 슈르하치의 장자이자 장조카인 도하신을 험한 전장으로 빼돌렸다. 그것도 어떤 저의가 있었다. 도하신은 아비를 닮은 그대로 전쟁터에서 크개 전공을 세웠다. 후금군대는 언젠가 이런 도하신이 일을 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가 정충신 부대에 체포되어 목이 달아나버린 것이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었던 정충신이 무릎을 탁 쳤다.

“저놈 목을 소금에 잘 절여서 얼굴이 상하지 않게 하라. 후금 본영에 보내야 할 것이야. 내가 밀서를 써줄테니 연락병은 저 자 머리와 밀서를 갖고 떠나기 바란다.”

후금의 새 지도자 다이샨과 홍타이지는 사촌의 두상을 보고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다. 미래의 잠재적인 경쟁자를 대신 척살해주었으니 그들은 손 안대고 코를 푸는 격이다. 정충신은 편지를 썼다.

-다이샨 패륵 합하. 우리 조선과 화약을 맺은 것은 본관이 바라던 바이였소. 하지만 후퇴하던 후금군의 만용이 하늘을 찌르고 있소. 그런 후금 군대를 격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중 합하께서 늘 꺼림칙하게 생각했을 사촌동생 도하신을 본관이 대신 처단했소이다. 도하신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음심을 갖고 있았고, 장차 건주여진을 꿰어찰 탐심을 가졌을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았소이다. 다이샨 패륵 합하의 친구로서 앞으로 나아가는 도정에 장애물이 없어야 하기에 본관이 우정의 표시로 미리 제거했소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