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0)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20)

후금의 군졸들은 광야의 야수처럼 사납고 용맹했다. 야전으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무리들이었다. 정충신이 장수대 망루에 올라 외쳤다.

“장수대에서 북을 치기 전까지는 군사들은 꼼짝하지 말고 제 자리를 지켜라. 적이 50자 앞까지 올 때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정충신은 적들을 최단거리까지 유인할 생각이었다. 적이 보폭을 좁히며 활과 창을 던져 여러 군졸이 쓰러졌다. 후두둑 화살이 빗살처럼 날아들자 한꺼번에 군졸 대여섯 명이 쓰러졌다.

“부원수 나리, 이러다 우리 병사들 다 죽습니다. 응수해야지요.”

천총 육대공이 지휘부로 뛰어들며 외쳤다.

“헛소리 말라. 최소한의 인명 손실은 각오해야 한다. 그것으로 적들을 일망타진한다.”

가장 좋은 병법은 아군을 하나도 안죽이고 적을 섬멸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하에 그런 병법은 없다. 적은 희생으로 전과를 크게 올리는 것이 그나마 성공한 전술인 것이다. 천총이 아이쿠, 내 새끼들 다 죽이네, 하며 밖으로 내달리다가 그도 독화살을 맞고 쓰러져 발버둥을 치더니 그대로 멈췄다.

“어쩔 수 없다. 나서지 마라.”

정충신의 서슬 퍼런 호령에 성 안의 군사들은 숨을 죽이고 엎드렸다.

적의 장수가 보기에는 성 안의 군사가 모두 도망을 가고, 깃발만 나부끼는 것으로 알만했다. 이윽고 후금 군사들이 요란을 떨며 몰려오더니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정충신이 마지막까지 적의 동태를 살피다가 마침내 명령을 내렸다.

“북을 쳐라. 방포부대 발포하라. 석전부대 공격하라!”

동시에 둥둥둥 전고(戰鼓)가 울리고, 석전부대가 큰 나무로 받치고 있던 나무를 제끼자 바윗덩어리들이 일시에 구르기 시작했다. 바위가 굴러떨어져 기마부대를 박살을 냈다. 으흐흥, 말들이 바위에 깔리면서 날뛰니 기병들이 차이거나 밟혀죽었다. 성벽을 오르던 자들이 화살을 맞고 벌레처럼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역습을 받은 후금 군사들이 한 순간에 물러섰다. 이때 정봉수 의병장이 달려왔다.

“부원수 나리, 저자들의 숫자가 기 천이 아니라 기 만입니다. 한번 물러갔다고 해서 퇴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인은 부대를 이끌고 적의 후미를 치기 위해 용골산성으로 가겠습니다.”

용골산성은 철산에 있었고, 검산산성과 함께 요충지였다. 그곳을 막으면 적의 진출로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다.

“위험하지 않겠소? 요충지에는 모문룡 군대도 있고, 후금 군대도 있다고 하던데?”

“그러니 빼앗겨선 안됩니다. 그곳은 본래 미곶첨사(彌串僉使) 장사준이 지키는 곳인데, 그 자가 오랑캐에게 투항해버렸소이다.”

“뭐요? 투항해버려?”

“그리 됐다고 합니다.”

“어린아이 콧김까지 필요한 마당에 첨사란 자가 도망간 것도 아니고, 적에게 투항해버려요? 이런 썩을 벼슬아치!”

정충신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정봉수도 흥분하여 소리쳤다.

“부사 이희건이 돌아오지 않자 투항한 줄 알고 그 자가 머리를 깎고 후금 부대에 투항했다고 합니다. 후금 부대가 이중간첩으로 알고 그 자를 가두려하자 그놈이 자기 마누라를 인질로 잡혔다 합니다. 그리고 용천부사가 되기를 청하고, 자칭 용천부사가 되어서 관청의 곡식을 후금 군량으로 제공했다 합니다. 약주를 빚어서 제공하고 소를 잡아 대접하고, 백성 중에 머리를 깎지 않은 자가 있으면 협박해서 머리를 깎게 해 후금 백성으로 만들고, 명령을 듣지 않은 자는 불복종자로 하여 효수했다고 합니다.”

“못된 놈. 하지만 이 말은 부대원들에게 전하지 마시오. 내가 나중 정리하겠소.”

장사준이 투항해버렸다고 하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졸들 사기를 무너뜨릴 것이다. 얼마나 한심하고 맥빠지는 일인가.

“그럼 어서 용골산성으로 들어가시오. 부대를 재편성해 응원부대를 보내주겠소.”

정봉수가 아우 정인수와 함께 용골산성으로 들어갔다. 용골산성은 용천, 철산, 의주 세 길목을 지키는 목이었다.

정봉수가 의병을 모으는 중에 장사준이 오랑캐 천여 명을 끌고 와서 용골산성 밖 5리 지점에 진을 쳤다. 장사준이 정봉수에게 글을 보내어 항복하기를 요구했다.

“정봉수 정인수 형제 보거라. 너희는 독안에 든 쥐다. 투항하면 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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