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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1)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1)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21)
“저런 쳐죽일 놈이 있나?”

정봉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보다 어떤 절망감이 싸아하니 가슴을 짓눌렀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조국을 버리는 놈, 이익을 위해 양심과 자존을 엿바꿔먹는 놈, 그런 자에게 과연 쓸개라는 것이 있는가. 착한 백성들 머리를 깎아서 오랑캐 사람으로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동족에게 칼을 겨누라고 명령한다. 세상에 이런 못된 짓을 하는 자를 벼슬아치라고 받들었다니, 절망에 앞서 슬픔이 앞섰다.

“다른 자는 몰라도 그 자만은 용서할 수 없다. 궁수들 모두 앞으로 나와 저놈을 향해 쏘아라.”

그러나 화살은 장사준 발밑에 닿지 못했다. 오히려 후금의 기병부대 역습이 감행되었다. 적의 기병부대가 한바탕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면 아군 진영의 한 귀퉁이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이러다 다 죽겠소.”

의병들을 이끈 아랫마을 우두머리가 절규했다. 위기를 느낀 정봉수가 전령에게 명했다.

“안되겠다. 전령은 급히 정충신 부원수 부대로 달려가 응원부대를 청하라.”

정봉수는 밀서를 써서 검산산성에 진을 치고 있는 정충신 부원수에게 보냈다. 밀서를 받아본 정충신이 한동안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고을의 벼슬아치가 조국을 배신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기서도 이 모양인가. 순간 그는 임진왜란을 생각했다.

그가 권율 광주목사(光州牧使)를 따라 웅치,이치전투에 참가해 왜군 6번대(군단)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군대를 부술 때, 동래포, 부산포, 김해, 거제도를 통해 상륙한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군대가 불과 19일만에 한양을 점령해버렸다. 이렇게 빨리 수도를 점령한 것은 영남 각 고을의 지도자들이 도망을 가고, 백성들이 왜군에게 협력하고, 그중에는 이웃을 밀고할 뿐만 아니라 머리를 베어서 상으로 쌀을 받아먹는 협조자가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쉽게 지역이 무너져 왜군이 부산에 상륙한 19일만에(1592.5.2.) 한강의 광나루·마전·사평·동작나루에 당도해 한강을 건넘으로써 모둔 방어선은 무너지고 말았다. 왜군은 아무런 저항없이 5월3일 4대문에 입성하여 이윽고 도성이 함락되었다.

약삭빠르고 아첨에 능하고, 어느새 뼛속까지 왜의 물에 들어버린 사람들을 보고 정충신은 절망했었다. 호남이 분기한 것에 비해 그것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전라 좌,우수영을 비롯해 바다나 육지부에서 호남은 단 한뼘의 땅도 왜놈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고경명 고인후 고종후 3부자, 김덕령(광주) 김천일(나주) 나대용(나주) 선거이(보성) 황진(동복) 이복남(나주) 정담(김제) 변응정(해남) 최경회(임실) 임계영 남풍(운봉) 송여종(정읍) 유팽로(곡성) 안영동(보성) 정걸 정발(영광) 임희진(해남) 위대기(장흥) 심우신(영광) 송대립 송희립 송정립 3형제(여산) 김대인(순천) 의기(義妓) 논개(장수) 등이 진주성 싸움, 노량해전, 명량해전, 한산도해전 등에서 혁혁한 전공을 쌓았고, 행주성싸움, 독산성싸움에서도 전라도 군사가 원정 나가 왜군을 격퇴했다. 벼슬아치나 백성들이 도망가버린 내륙의 곳곳은 물론 해상의 물골마다 달려가 왜적을 물리쳤다.

이렇게 해서 왜적을 몰아냈는데, 이번에는 서북에서 오랑캐를 만나서는 짚신짝을 거꾸로 신고 아군을 향해 총질하는 자가 나타났다. 실로 괴로운 일이었다.

“내가 후금과 친한 것은 대등한 입장도 아니고 우월한 지위에서 한수 가르치며 다스리는 차원이었는데 그 자는 종이 되어 역적이 되었군.”

정충신은 유격 습격병을 차출했다. 그런 자는 몰래 침소에 들어가 그의 목을 따버리리라. 정충신은 수족처럼 부리는 편비장(대장 비서장) 나판수와 중군장 지계최, 소모장(召募將:군사를 끌어오는 무장)을 불러 명을 내렸다.

“각자 유격병들을 지휘하라. 장사준을 반드시 생포해오라. 배신자의 말로가 어떠하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이들이 용골산성으로 달려가 야밤에 침소를 기습해 장사준을 생포했다. 정봉수에게 인계하자 그가 홧김에 그 자리에서 장사준의 목을 땄다.

“생포하라고 했는데...”

“아니오. 살려두면 탈이 나오이다.”

역도의 머리가 아군 진영의 마당에 높이 솟은 장대에 매달려 허공중에 대롱거렸다. 병사들의 사기가 오르고, 적의 부대로 끌려간 백성들이 떼거리로 아군부대로 몰려오자 아군 진영이 모처럼 환호성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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