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4)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24)
오랑캐 장수 호오거가 외쳤다.

“모두 용골산성으로 후퇴하라.”

조선군은 발석차를 개발하여 후금군의 공성 기구를 파괴했다. 발석차는 돌을 발사하는 무기인데, 처음 두 대를 만들어 용골산성에 배치해 발사했다. 성능이 우수해 정충신은 지방민을 동원해 열 대를 더 제작해 현장에 투입했다.

발석차는 덩치가 커서 이동하기가 불편한 흠결이 있었으나 바퀴를 달아서 이동시키니 공성전에 적합한 무기였다. 지렛대와 관성의 원리를 이용해 쏘아올리는 신무기였다. 줄을 감으면 추 부분이 들리고 탄성이 강한 부분이 활처럼 휘는데, 이때 걸쇠에 걸어 돌을 장전한 후 순간적으로 줄을 잡아당기면 일시에 날아가 적 진영을 파괴한다. 돌이나 불 붙는 물질을 던지고, 때로는 부패한 시체를 던지기도 한다. 병이 옮기도록 하는 일종의 화학전인 셈이다.

정충신은 적이 삼림지역에 유리한 지형을 택하여 진입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좌우 산협에 정포(精砲) 200을 매복시켰다. 아군의 동향을 모르는 적은 발석포를 피해 내려오는데 이때 잠복하고 있던 정포가 집중적으로 포를 쏘아 적을 궤멸시켰다. 적군의 머리를 수습해보니 600급이나 되었다.

“대승이다.”

정충신이 외치고, 적 섬멸의 전과를 강화도에 머물고 있는 임금에게 보낼 계획을 세웠다. 정봉수 의병대장이 나섰다.

“부원수 나리, 600급의 머리를 잘라 행재소로 보내겠소이다.”

그는 휘하 군졸을 선발해 죽은 후금군의 목을 잘랐다. 일이십 개도 많은데 600의 머리를 자르니 끔찍했다. 어느새 핏물이 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할 짓이 못되누마요.”

휘하 군졸들이 작업을 하면서도 코를 막고 머리를 휘둘렀다. 무엇보다 산처럼 쌓인 핏물 떨어지는 대가리를 모아 우마차에 실어 바다를 건너 강화도에 이르는 일이 끔찍했다.

“정봉수 장수, 생각은 좋으나 600개의 머리를 보낸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오. 대신 적의 귀를 잘라 보내는 것이 어떻겠소?”

“그것 좋은 생각입니다.”

귀를 자르니 친이백 개가 되었다. 그것들을 거적에 포장해 갑사(甲士:각 고을에서 뽑혀 지역방어를 하는 갑병) 장초를 시켜 뱃길로 건너가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이 전리품을 받아보고 크게 기뻐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으로 떨었다.

“이렇게 죽였으면 필시 보복하러 올 것인데, 무엇으로 감당하려는고?”

한편 정충신은 검산산성이 위태롭다는 첩보를 받고 서둘러 근무지로 돌아왔다. 후금군의 증원부대가 쳐들어오고 있었다. 정충신은 각 성이 허물어지거나 퇴락해 방어가 취약하다고 보고, 우선적으로 군사와 지역민을 동원해 성을 보강했다. 이때 축성된 성이 의주 백마성, 용천 융고성, 철산 운애성, 곽산 능한성, 영변 약산성, 황주 정방산성, 자산 자모산성 등이었다.

정충신이 각 성 축성에 진력하는 사이 후금군의 후속 기병부대가 용골산성에 들이닥쳐 1627년 6월 14일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왕족 호어거를 응원하는 정예부대였다. 인조의 우려는 적중한 셈이었다. 정봉수 부대는 대패한 뒤 대저도로 후퇴했다.

정충신은 용골산성 전투 패배 원인을 용천 파총(조선조 때의 종사품의 무관) 이학례로부터 전해 들었다.

“정 부원수 나리, 나리께서 승리로 이끌어주신 것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패배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산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급료가 늙은이와 어린이 등 가족을 먹일 수 없게 턱없이 부족했나이다. 지방군들의 원망이 자자했으며, 싸움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열씩 스물씩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린 가운데 군량과 병기의 지원이 없으니 지탱할 수 없게 되어 스스로 무너진 것입니다.”

“발석차는 어떻게 되었나?”

“빼앗겼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발석차를 빼앗긴 것은 결정적 패착이었다. 전력 손실이 막대한 것이다.

“대략 병사 1인의 가족은 적게는 서너 사람, 많게는 조부와 아비, 자식들까지 10여 인이 됩니다. 양곡이 부족하여 하루 1홉씩 분배했나이다. 한끼 식사도 안되는데, 그것마저 거르기가 일쑤였습니다. 첨방군들은 더 힘들어 했나이다.”

첨방군은 전라도 수군으로서 임진왜란 시 경상도 통영에서 막강 전력으로 부방(赴防)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가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서북 변경을 부방하는 임무를 띠고 올라온 직업군인들이었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