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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7)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27)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27)

후금군의 봉쇄 활동으로 전라도 첨방군도 때를 놓쳐 용골산성을 회복하기 어려워졌다. 조정에서는 이미 화의가 성립되었으니 나서지 말라고는 엄명을 내렸다.

“우리가 불원천리하고 달려와서 싸우고, 무작스럽게 당하는디도 군량은 안보내고 창검을 내려놓으라고? 상녀를 새끼들. 현장 상황을 모르고 무슨 개수작이여?”

첨방군의 별무사 박쇠골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별무사는 국출신(局出身)·마군(馬軍)·보군(步軍) 중 무예가 출중한 군사 중에서 선발하는데, 박쇠골은 월도(月刀)·이화창(梨花槍)·쌍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무예가 출중한 군졸이었다. 그것으로 몇몇 전투에서 무공을 세워 하급 무장으로는 꽤 높은 무장 벼슬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는 무엇보다 어떤 전장에서건 뒤로 물러서는 것을 수치로 아는 사람이었다. 오늘도 아군들이 피를 보고 있는데 두 손 놓고 있으라 하니 눈에서 천불이 나는 것이다.

“너 혼자만 칼 잘쓰면 뭐하냐. 오랑캐는 수만 군사고, 우리는 굶주려서 다 죽는 판인디, 혼자 용쓰면 뭐하냐고. 도망가뿔자.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산적이 되거나, 멧돼지나 호랑이 잡아서 연명하면 되지 않겄어?”

곁의 전우가 말했으나 박쇠골이 눈을 부라리며 거부했다.

“나는 오랑캐놈들 떼거리로 몰려와도 암시랑도 안하당개. 명색 별무사 계급이 그런 것 두려워하면 인간이 아니제.”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나머지 생명이라도 보존하라. 이 전투는 우리가 패했다.”

의병장 정봉수가 급히 달려와 외치며 아군의 출성과 이동을 지시했다. 그는 5월 30일 계문을 올려 양곡이 떨어지고, 전염병이 치성하여, 노약자 1,370 명이 사망하고, 도망자도 늘어나는 등 비전투 손실이 계속 증가하므로 성을 공격할 수 없다고 장계를 써서 알리고, 6월 14일 잔여 인원을 이끌고 철산 앞바다의 대저도로 숨었다. 다음을 기약하자는 것인데, 그렇더라도 첨방군은 끝까지 싸우다가 군사가 일백으로 줄어들자 도리업ㄱ이 대오를 갖춰 삼림지대로 들어갔다.

한편 정충신은 군량을 모집해 용골산성과 검산산성으로 보내고, 압록강을 건넜다. 영원성에 이르러 원숭환을 찾았다. 명군은 혼자 달려온 정충신을 맞더니 한결같이 놀랐다.

“어떻게 후금군 지역을 돌파해 왔소이까?”

“그래서 홀홀단신 왔다. 군대를 이끌고 오면 나의 지체가 노출되고, 그럴 적시면 영원성 오는 길이 험난했을 것이다.”

부장의 안내로 정충신은 위숭환 앞에 나아갔다.

“조선의 부원수 정충신입니다. 중요한 정보를 갖고 왔소이다.”

원숭환은 영원성 전투에서 막강한 누르하치 군대를 물리친 장수답지 않게 인상이 부드러웠다. 미리 파견된 모문룡을 시켜 후금을 치라고 했으나 그는 평안도 가도(피섬)에 진을 치고 여러 섬을 휘하에 넣은 뒤 사병(私兵)을 양성하고, 후금과 결탁해 싸우지 않았다. 대신 조선에 군량을 강요하며 약탈을 감행하는 등 못된 짓을 하고 있었다. 골치를 앓은 명의 조정은 위숭환을 병부시랑(兵部侍?) 겸 요동순무(遼東巡撫)로 발령내 요동에 파견했다.

“원 장군, 이러다 모문룡이 천자를 자임하겠소. 조공무역에 세금을 매겨 폭리를 취하고, 악취나는 부정과 부패로 산하가 더럽혀지고 있소이다. 불러들여서 조치하시오.”

“방법이 있소?”

“본관이 모문룡을 가도에 가두어 두었소이다. 병부시랑께서 모문룡의 승진을 명하고, 여순으로 불러들여 조치하시오.”

“공이 없는데 승진이라.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겠소. 그자가 후금과의 전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채 밀수 등을 일삼으며 독자세력화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소. 뇌물로 엄당(?黨:명나라 황실을 지키는 환관들의 정치 집단)의 비호를 받으며 횡포를 부리고 있지. 그래서 나도 망설이고 있었소. 그런데 귀관의 말을 듣고 내 어찌 그 자를 내버려두겠소. 황제의 재가가 없어도 매 명으로 잡아가두겠소.”

그는 누르하치를 누른 장수다운 기품과 배포가 있었다. 그는 밀서를 써서 서순무를 가도에 파견했다.

정충신은 그 길로 후금의 수도 선양으로 향했다. 후금은 누르하치 사후 조정이 어수선했다. 장자는 아비의 첩을 손댔다가 일찍 칼을 맞아 죽고, 차자 다이샨이 버이러(패륵)으로써 정권을 승계받아야 했는데, 성정이 온유해서 8남 홍타이지에 밀리고 있었다. 정충신은 다이샨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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