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3> 광주 이씨 양진제공파 이진래 고택과 열화정
‘약무호남 시무국가’ 기여한 보성 부호 집안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 도와 군량 조달
백성 구휼한 인심 가문 전통으로 이어져
열화정,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전남 보성군 오봉리 강골마을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된 광주 이씨 양진제공파 이이덕 종가의 종택 ‘이진래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이진래 고택 앞 연못에서 바라본 종택의 모습. /서정현 sjh@namdonews.com

득량역이 있는 전남 보성군 득량면 오봉리 강골마을에는 11대가 대를 이어 세거한 고택과 정자가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59호 광주 이씨 양진제공파 이이덕 종가의 종택 ‘이진래 고택’과 ‘열화정’이다.

광주 이씨 시조는 신라 내물왕 때 ‘이자성’이다. 경기도 광주 이씨가 전남 보성에 세거하게 된 배경에는 양진제 이수관(1500~1572)이 당시 전라감사였던 부친 이세정과 보성 조성의 부호인 전주이씨 이언정의 인연으로 그 외동딸과의 혼인이 있었다. 이수관은 장성현감으로 재직하면서 하서 김인후와 교우하고, 중앙에 나아가서는 퇴계 이황 선생, 율곡 이이 선생과 경을 논하고 성리학을 강론하다가 은퇴해 낙향했다. 학포 양팽손, 눌재 박상과 의리로 상통했던 인물이다.

이진래 고택 안채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풍수명당 자리…대대손손 인물 배출

양진제 이수관의 셋째아들 이유번은 강골마을에 자리 잡은 입향조로서 장남 이응남이 우계 성혼의 문인이었고, 정유재란 때 보성 송곡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친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돼 있다. 보성 득량은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에서 돌아와 지휘권을 잡고 가장 먼저 달려와 수군을 재건한 고장이다. 정유재란의 풍전등화 상황에서 군량과 무기, 수군과 배를 마련해 전세를 역전시키는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보성 조성면 조양창 군량과 회령면 수군, 군기고의 무기와 회령포 전함 열두척으로 울돌목 해전을 준비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에 기여했던 호남 가문이 보성 부호 광주 이씨 집안이다.

양진제 이수관의 고손자 이이덕은 원암종가의 종가조이다. 종택은 건너편으로 오봉산이 보이는 방장산 줄기의 산수와 득량만 간척지의 너른 들판이 아스라이 펼쳐진 강골마을 안쪽에 있다. 지리·생리·산수·인심 등 네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양택의 풍수명당 마을이라 대법원장 이용훈, 국회의원 이중재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마을이다.
 

이진래·이정래 고택 사이에 있는 우물은 가뭄을 이기기 위해 마을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후덕한 인심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는구휼은 이 집안의 내력으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집안 내 우물. /서정현 sjh@namdonews.com

◇인심 후덕한 보성 부호 집안

‘이진래 종택’은 지방 사대부집 건축양식을 인정받아 국가 중요 민속문화재 제159호로 지정, 안채·사랑채·대문채·중문채·곳간채와 솟을대문·사당·연못 등으로 구성됐는데 4세손 이진만이 1835년 건립했고 8세손 이진래가 개축했다. 9세손 이용욱 때인 1984년 중요 민속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보성 이용욱 가옥’으로 칭하다가 2016년 ‘이진래 고택’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이진래 고택은 이준회·이정래 고택을 좌우에 두고 있다. 본래 한 집이었는데 형제를 분가시키면서 세 집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담장 없이 곳간채가 경계가 되기도 한다. 이정래 고택과의 사이에 있는 이 집안 소유 우물은 가뭄을 이기기 위해 마을사람들에게 제공됐다. 우물로 통하는 작은 창구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듣고 구휼하는 인심 후덕한 집안 내력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이씨 종택 동쪽 언덕에 위치한 열화정은 아름다운 풍경의 정원으로 알려져 영화 ‘천문’, 드라마 ‘녹두꽃’, ‘태백산맥’등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서정현 sjh@namdonews.com

◇‘풍광명미’ 담긴 열화정

이진래 고택의 동쪽 언덕 자락에 이이덕 종가의 4세손 이진만이 1845년 후진 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가 열화정이다.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라는 도연명의 싯귀를 따서 열화정(悅話亭)이라 지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162호 열화정은 마치 사랑채처럼 ㄱ자형 건물과 일각대문·마당·연못에 자연을 살린 꾸밈없는 정원을 갖춘 뛰어난 구조와 아름다운 모습으로 유명하다.
 

열화정과 이진래 고택 종가의 이의재 씨. /서정현 sjh@namdonews.com

정자의 4칸 중 중앙 두칸은 방 두 개의 구들로 하고 세로 두칸은 누마루로 조성했다. 누마루에서 보이는 팽나무 옆에는 동백과 백일홍, 벚나무와 목련이 둘러치고 ㄱ자형 연못이 담장을 대신해 넘치는 물이 계곡으로 흐르도록 했다. 사시사철 번갈아 핀 꽃 향기가 가득한 누마루에 앉아있으면 흐르는 물소리에 맞춰 계곡 옆 대나무가 산들바람에 사각대고 처마끝 풍경소리가 평화로 인도한다.

열화정으로 가는 골목길. /서정현 sjh@namdonews.com

추운 날엔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술 한잔 나눴을 옛사람들은 이 정자에서 무엇을 꿈꿨을까? 영화 ‘천문’, 드라마 ‘녹두꽃’, ‘태백산맥’ 촬영지로 알려진 열화정이다. 이곳은 이 집안사람 이윤선(일명 이웅래 또는 이백래)이 일제에 항거 준비를 했던 곳이다. 이윤선은 1907년 능주의 호남창의소 도대장으로 양회일과 함께 보성·장흥 등지의 일본 헌병과 격전을 벌였었다. 이윤선이 이양래, 이관희 등과 열화당에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가문에 면면히 흐르는 민족정신이 전승되는 정원이어서 더욱 아름답다.

두 개의 국가문화재를 간직한 이이덕종가에서는 한류체험으로 한옥숙박을 운영한다. 집안의 전통만큼이나 배려와 정성으로 손님의 만족을 이끌어 특히 외국인에게 인기가 높다. 숙박예약 사이트인 호텔스닷컴 9.6 평점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은 사랑채를 독채로 숙박할 수 있으며 오는 6월까지 예약이 완료됐다.

이진래 고택은 세계인이 스스로 찾아오는 ‘매력 만점’의 한류 대표라 할 수 있다.
/서정현 기자 ndpl@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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