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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2)

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2)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32)

갑조와 병조 배급관들이 불려나왔다. 그의 휘하에서는 이런 배신자가 나오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네 이놈!”

정충신 부원수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갑조의 배급관이 덥석 엎어져 무릎을 꿇었다.

“부원수 나리, 소관이 잠깐 눈이 삐었습니다. 저저들의 유혹에 잠깐 이성을 잃었나이다. 탐관(貪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소인을 나무라주십시오.”

“그렇다. 너는 저 자들보다 더 나쁜 놈이다. 나는 실로 너같은 부하를 둔 적이 없다.”

배급관이 고개를 수그리고 소리내어 울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소인 백번죽어도 쌉니다.”

“귀관은 나를 배신하고 나라를 배신하고, 저 굶주린 백성을 배신했다.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종사관에게 참수를 명했다. 종사관이 단 아래 별무사에게 명하자 별무사가 긴 칼을 빼들어 단숨에 갑조 배급관을 참수했다. 정충신이 병조의 배급관에게 물었다.

“사실대로 고하렸다.”

배급관의 머리가 톡 떨어진 것을 본 병조의 배급관은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배급 책임자가 대신 말했다.

“이 자는 곡식을 나누는 과정에서 20가마를 빼돌렸습니다. 기생집에 숨겨두고 기생과 놀아나면서 탕진하였습니다. 기생이 도로 갚겠다고 해서 배로 갚았나이다.”

그는 앞의 배급관보다는 죄가 가볍다고 판단해 한쪽 발목을 잘랐다.

“목숨만은 부지토록 하겠다. 대신 평생 취사반에서 병사들 밥을 해주어라. 배는 주리지 않을 것이다.”

“저기 기생년이 달려와서 서방을 살려달라고 읍소하고 있습니다.”

영문(營門) 아래에서 머리를 산발한 여자가 엎드려 울면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정충신은 그녀를 불러들였다.

“이 자를 지아비로 삼겠다고 하면 너도 취사반에서 병사들 밥을 해주거라. 지아비와 함께 평생 밥을 굶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기생이 병조 배급관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지방관들을 모두 영내의 감옥에 쳐넣고,그들의 창고에서 양곡을 꺼내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정충신은 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퇴하기를 염원했지만 갈수록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치가 문제였다. 특권기득권층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치 구조, 거기에 결탁과 정실과 야합과 부패가 한 덩어리가 되어 썩어가고 있다.
혁신적 생각도, 젊은 패기도 그 구조 속에 편입되면 물엿처럼 녹아버린다. 하긴 반대편에 서면 한 순간에 도태되고, 이적이 되고, 심지어는 반역이 된다. 나라의 경쟁력을 좀먹는 지긋지긋한 부패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정작 임진왜란도, 졍묘호란도 이런 추한 구조 속에서 나라의 힘이 소진된 결과 아닌가.
양심적인 사람은 제거되고, 어떻게든 부정한 돈을 싸가지고 사대부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면 권력을 얻고, 권력을 얻은 자는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해 다시 아래를 탄압하고 쪄누르며 부정하게 돈을 끌어모은다. 이렇게 해서 조선의 모든 제도가 구세력의 밥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동력을 찾을 수 없다. 이렇게 나라 꼴이 허약해지니 왜놈 종자에게 당하고 여진 오랑캐에게 당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믿을 건 우리 군사들이다. 믿을 건 부하들이다.
"너희가 다시 가련한 백성들에게 양곡을 풀어 분배토록 하라."
그의 명을 받고 창검을 든 군사들이 수령들의 사가와 창고에 들이닥쳐 양곡을 꺼내었다. 마을마다 방을 붙여 양곡을 가져가라고 알리자 백성들이 자루를 들고 수령의 곳간으로 몰려들어갔다. 그리고 하나같이 곡식자루를 어깨에 메고 부원수 영문 앞에 이르러 저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돌아갔다. 정충신은 조정에 장계를 써서 보냈다.
-오리(汚吏:썩은 관리)의 양곡을 풀어 백성들 구휼에 나섰습니다만, 관서지방이 워낙 재난이 심한 곳인지라 곡식 분배에도 곰 입에 개미 한 마리 들어가는 꼴입니다. 백성들에게 속히 식량과 의복을 지급하지 않으면 희생자가 늘어나고, 건강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역병이 돌 것 같습니다. 타도에서 온 객병들 또한 곤란합니다. 의복이 남루하고, 먹을 것이 부실하니 향수병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가 나오고, 어떤 자는 북으로 내빼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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