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기고-‘드므’를 통해 본 조상들의 지혜

강홍구(광주 남부소방서 예방안전과장)
당신은 지금 거액의 상금이 걸린 퀴즈대회 마지막 문제만을 앞두고 있다. 이 문제를 맞히면 큰 상금을 탈 수 있다. 초조한 순간 마지막 문제가 공개된다. ‘드므란 무엇인가?’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외국어일까? 도무지 단어만 봐서는 뜻을 유추할 수 없다. 그동안 아껴온 힌트 찬스를 쓸 수밖에 없다. 총 세 가지 힌트가 제공된다. 첫째, ‘드므’는 순우리말이다. 둘째, ‘드므’는 조선시대 궁궐과 같이 중요한 건물 네 모서리에 위치한다. 셋째, ‘드므’는 청동이나 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꽤 크고 물이 담겨 있다. 중요한 건물 주변에 물이 담긴 큰 그릇이 있다면 과연 이 물은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드므’의 용도를 유추해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궁궐은 늘 화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목조건물의 특성상 한번 불이 붙으면 진화가 어려웠기에 우리 선조들은 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고민했다. ‘드므’에는 화재를 막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드므’에 담긴 물은 화재 진압 시 사용됐으며 화재를 예방(豫防)하는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선조들은 화재의 마귀를 뜻하는 험상궂게 생긴 화마(火魔)가 불을 내러 왔다가 ‘드므’ 속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놀라 도망간다고 믿었다. 화마에 대항하기 위한 또 다른 상징물로는 해치 상이 있다. 경복궁 앞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쌍의 해치 상은 불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화재는 여전히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소방시설이다. 우리 주변 곳곳에는 소화기, 스프링클러, 화재감지기 등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화재의 위협에 시달린다. 소방청 화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총 4만103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하루 평균 약 110건의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중 부주의(不注意)로 인한 화재가 2만146건으로 50%가 넘는다.

소방법령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으며, 첨단 소방시설도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방재(防災) 시스템을 갖추고 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개개인이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결코 불을 막을 수 없다. 화마는 설마를 좋아한다. 설마 내게도 그런 일이 있겠어? 라고 안주하는 순간 화마는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화재에 대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드므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실천 방안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내가 살고 있는 주택에 주택용 소방시설(단독경보형감지기ㆍ소화기 등)이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10년 이상 된 노후 소화기가 있다면 반드시 교체해야 한다. 화마가 드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달아나듯 화재를 막기 위한 우리의 경각심(警覺心)은 화마를 물리치는 가장 실천적이고 상징적인 대응 방안임에 틀림없다.

이제 우리에겐 퀴즈대회 정답을 맞히기 위한 충분한 힌트가 제공되었다. 이제 남은 일은 정답을 외치는 용기, 화재를 예방·대비하기 위한 실천(實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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