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5)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35)

“남 병사의 첩실 중에는 김여란이라는 젊은 여인네가 있었습니다. 남 병사가 구성부사로 있을 때 맞아들인 것이지요.”

김여란은 본래 성이 연안김씨였다. 양반의 후예였지만 조상중에 역도로 몰려 귀양살이를 했고, 김여란은 종이 되어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사또 사저의 시종으로 들어갔다. 나이가 어린데도 기품이 있고, 미모도 출중해서 사또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중 구성부사로 부임해온 남이흥이 그녀를 더욱 귀여워했다.

김여란은 남이흥의 측실(側室:곁방살이, 즉 첩실)로 들어앉았다. 글을 깨우친데다 이팔청춘 이후 머루알처럼 검은 눈에 이마와 볼, 목선, 어느것 하나 자태가 빼어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묘호란이 닥쳤다. 오랑캐는 여자를 보면 물불 안가리고 덥치는 무리인지라 남이흥 부사는 김여란의 안위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난리통의 진중에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저에 놓아둘 수도 없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도 그녀만은 잃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에게서는 태기가 있었다.

“한양 집으로 내려가있거라.”

사또의 은고(恩顧)를 입은 입은 여란은 어른이 시키는대로 한양 본가로 내려갔다. 그러나 갈수록 전황이 불리하다는 소식만 들려와 여란은 편안히 지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 병사의 아들 남두병에게 사정했다. 벼슬에 나갔다가 집에서 쉬고 있는 청년이었다.

“나를 영감한테 데려다줘요. 편안히 잠을 잘 수도 없소. 먹을 것도 안넘어가요. 낭군님을 생각하면 따뜻한 방이 가시방석 같아요.”

남두병의 나이 스물이고, 김여란의 스물한살이었다. 남두병도 아버지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함께 길을 떠났다. 남두병은 무복 대신 평복 차림이고 여란은 상복을 입었다. 나쁜 무리를 만나 희롱을 당하거나 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옷매무새부터 단도리를 하고 북을 향해 말을 몰았다. 개성에 당도하여 여곽에 여장을 풀자, 그때 마침 안주부의 비장이 말을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도 하루 쉬어갈 요량으로 여곽에 들어왔는데 여란과 맞닦뜨렸다.

“아니, 비장이 어찌 여기까지!”

그러나 비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대가 여기 어쩐 일로....”

“소첩은 낭군 모시러 구성 간다우. 구성이 하도 시끄럽다고 해서...”

“어허, 낭패로구나. 나는 시방 남 병사 부음을 갖고 한양으로 말을 달리는 중인데... 전사하셨습니다.”

“낭군님이 전사했다고?”

여란은 끝내 기절을 하고, 일어나보니 두병은 북으로 말을 달리고, 비장은 한양으로 가고 없었다. 여란은 변복한 상복이 깨림칙했지만 예지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언덕에 올라가 북편을 향해 정배를 하고 은장도로 자기 가슴을 찔러 자결했다.

“부인도 아니고 본실도 아닌 사람이 그랬단 말인고?”

“그렇사옵니다. 한 사내의 첩이고 소실이고 측실이고 별방이지만 지아비를 섬기는 마음은 동백꽃보다 붉습니다.”

“슬프구나, 그 어린 여인을 위해 추모 행사를 가져야겠구나.”

“소관이 추모시를 만들었습니다.”

정충신이 나직이 시 한수를 암송했다.

夫死於君妾死夫(지아비는 임금 위해 죽고 연인은 지아비 따랐네)

一家全節世眞無(한 집안의 온전한 절개는 세상에 드문 일일세)

廣陵南畔留雙塚(광릉쪽 남쪽 언덕 위 쌍묘에 머물면서)

千古行人起帳呼(오랜 세월 지나는 길손에게 흠모의 정을 돋워주리)

“장하도다. 그 장부의 연인이로다. 그러하면 평안감사는 어쨌다는 말이냐.”

“남 병사가 애절하게 구원병을 보내주도록 요청했으나 구원병은 커념 그 자신이 줄행랑을 쳐버렸습니다.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나라가 위태로운데 그 자는 도망가버렸나이다.”

임금이 주춤했다. 한성부윤보다 권세가 막강한 평양감사는 바로 임금의 측근이었던 것이다.

“후사는 병조와 비국에서 처리할 것이니 정 공은 어서 일선으로 나가 진충보국하라. 급하다.”

정충신은 뭔가 한마디 하려다 말고 그 길로 임지로 달려갔다. 산성과 중영, 본영을 시찰하고 부원수 막영에 이르자 초관과 연락병이 뛰어왔다.

“장군, 후금군과 백성이 한 무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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