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6)

6부 2장 용골산성 전투(536)

얼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째서 후금군과 백성들이 한 통속이 되어 움직인단 말이더냐.”

“가보면 알 것 같습니다.”

연락병도 사실을 잘모르는지 이렇게 말하고 앞장섰다. 들판을 지나고 조그만 고개에 이르자 만족(蠻族) 복장을 한 젊은 장정들이 활과 총을 메고 고갯마루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한 눈에 볼 때 적군임에 틀림이 없었다.

“저놈들을 일망타진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선 백성들이 그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정충신이 척후병을 고갯마루에 투입했다.

“정탐하고 오거라.”

한참 후 돌아온 척후병이 보고했다.

“만족 복장을 한 패거리들이 후금군과 조선의 산적들을 타격했다고 합니다.”

“후금군도 척결하고 조선의 산적들도 물리쳤다는 말이냐? 어떤 무리들이길래 그러는가.”

“저들 무리는 기동타격 중대로서 모수(毛帥:모문룡 장군)에 반기를 들고 사선을 넘어왔다고 합니다. 명나라 원숭환에게 가는 도중 후금군에게 저지를 당해 용골산록의 서시령을 넘지 못하고 있나이다. 그 과정에서 백성들이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모수의 기동타격 중대는 후금군이 들어오기 전 용암포 인근의 고을에 들어갔다. 그런데 마을은 후금군, 모문룡군, 조선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들은 포위되어 탈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백성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백성들이 현지 지형에 밝다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들은 농민들이 안전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주변 경계를 펴고, 지휘관은 대민 지원 특명을 내려 농사를 짓는 데 병사들을 동원했다. 먹을 것을 약탈하는 자는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가차없이 응징했다.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산다. 명예 대신 권력을 얻고,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이러니 따르지 않은 자가 없었다.

“내 그를 만나리라.”

정충신이 척후병의 말을 듣고, 중군장과 휘하 병사 20여명을 대동하고 고갯마루로 올라갔다. 산 비탈을 오르자 군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화살이 일제히 날아오는 것이다. 정충신이 환갑휘도(갑옷을 입고 칼을 휘두름)를 하며 독전하는데 지근거리에서 만족 복장이 불쑥 나타나더니 소리쳤다.

“정충신 부원수 나리! 어인 일이삽니까.”

“너는 누구냐.”

“남도 첨방군입니다.”

“만족 아니더냐?”

“옷이 없어서 후금군을 무찌르고 그의 옷을 입었을 뿐입니다. 어서 오르십시오.”

정충신이 산마루에 오르자 만족 복장의 장정들이 일제히 나서서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중 엄 대장이란 자가 말했다.

“부원수 나리, 우리는 조선족으로서 변경에서 모수에게 포로로 잡혀 총알받이로 싸우다 탈출했습니다.”

그들이 백성의 편에 선 것도 그런 연유였다.

“모수를 쫓는 명군이 없던가?”

정충신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원숭환 군사가 가도로 들어가 모수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계급 특진시켜서 영웅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 개자식을 특진까지 시켜주다다니요.”

정충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내다보았다.

“아마도 그를 요동땅으로 초청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그럴 일이 있다.”

실제로 원숭환은 모문룡을 요동반도로 불러들였으나 모문룡은 눈치를 챘는지 요동땅 대신 그 앞바다의 작은 섬에서 만나자고 수정 제안했다. 이 무렵 조선 땅에는 모문룡보다 더 독살스런 명나라 장수가 나타났다. 바로 유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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