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영광 전주이씨 완풍대군파 양도공 종가 / 이규헌가옥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조선 개국부터 이어온 600년 역사…국난마다 나라 지킨 명문
태조 이성계의 형 이원계, 완풍대군파 가문 열어
세번 공신 오른 양도공 이천우, 文治 건의…세종 때 실현
영정·이응도·효자정려에 담긴 충효정신 계승
고려말·임진왜란·구한말 위기마다 구국의 횃불
조선 개국부터 600년 역사를 지킨 가문이 전주이씨 완풍대군파 양도공 종가다. 뿌리 깊은 가문을 열었던 할아버지(派祖파조)는 670년 전 고려말 인물 이원계(태조 이성계의 형)이다. 종가는 가문의 보물 이야기와 가훈으로 수많은 인재를 키워 국가의 근본인 충효 전통을 계승했다. 24대를 지켜낸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양리 완풍대군파 양도공 종가의 자부심을 살펴본다.
◇이성계의 형 이원계, 천명에 따르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하나뿐인 형이 전주이씨 완풍대군파의 완풍대군 이원계(1330~1388)다. 함경도에서 이자춘의 장남으로 태어나 배다른 두 동생과 우애가 깊었고, 29세에 종3품 판사에 오른 문무겸비의 충신이었다. 고려말 1380년 남원의 황산대첩에서 이성계와 함께 왜적을 물리친 공으로 정1품 완산군에 녹훈됐다. 1388년 요동정벌에 참가해 위화도 회군에 반대했으나 결국 회군대열에 참가했다. 고려에 대한 충절과 조선 개국의 천명 사이에 고뇌하다 이성계에게 정명시(正命詩)를 남기고 자결했던 비운의 인물이다.
◇양도공 이천우, 세 번이나 공신 책봉
완풍대군 이원계의 세 아들 중 둘째 이천우(1354~1417)가 양도공이다. 동녕부 수령으로 있다가 숙부 이성계 휘하에서 황산대첩 왜구 토벌에 용맹을 떨친 이천우는 사촌인 태종 이방원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즉위식에서 태조(이성계)를 부축할 정도의 개국공신이고, 두차례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정사(定社), 좌명(佐命) 공신에 책봉되어 세 번 공신에 오른다.
세자 양녕대군을 수행하고 명나라 공자 사당에 참배함으로써 유교적 문치 국가 조선에 대한 희망을 새겼다. 의금부 도제조(사법기관 최고위직)와 완산부원군에 올라 높은 벼슬을 스스로 경계해 은퇴의 뜻을 밝히자, 태종은 보답의 뜻으로 전답과 노비를 내렸으나 공은 이를 사양했다.
대신 ‘노화송골, 백송골’이라는 두 마리의 송골매를 청했다. 태종이 매사냥에 빠지지 않고 문치국가의 기틀을 만들 것을 권유하는 공의 뜻을 태종은 흔쾌히 수락했다. 두 마리 송골매 그림이 ‘이응도(二鷹圖)’고 공의 ‘영정’과 함께 하사받았다.
태종은 교지에서 ‘왕업의 기틀을 다진 공로를 기려 특별한 예우를 내린다’고 했다. 세종은 태종을 종묘에 모실 때 배향할 신하로 양도공을 올렸다. 세종은 특히 사병혁파 정책에 찬성한 공의 식견을 칭송했다. 이처럼 양도공의 큰 뜻은 태종이 받아들이고 세종의 문치(文治)로 실현되었다.
◇국난마다 나라 지킨 빛나는 인물들
종가의 세거지가 영광이 된 것은 양도공의 장남이 세상을 뜨자 맏며느리 경주김씨는 아들 4형제를 데리고 친정인 담양으로 왔고, 다시 이천우의 증손자 이효상이 처가인 영광 묘장 당산마을에 이주해 현재까지 종가를 이어 오고 있다.
이응종(1522~1602)은 이효상의 증손자로 부친 이학과 모친 해남윤씨(어초은 윤효정의 딸)의 장남인데 성균관에서 공부하다 붕당에 따라 낙향했다. 71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성남문창의에 참여, 의병 3천명을 모아 출전시켰다. 군량과 무기 등 군수물자를 광주와 의주행재소에 보냈다. 이응종은 영광성을 지키기 위해 의병으로 군대를 조직하고 수성대장이 되었다. 영광읍의 ‘임진수성사’에서 55명의 충의선비를 추모한다.
양도공 종가는 전통과 내력 자체가 가르침이 되어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19대 종손 이의갑이 ‘계자명’이라는 가훈을 병풍에 새겼다. 본보기가 되어 종가 후손들이 첨렴과 우국충정, 정의수호를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종가는 구한말 의병장 이사유와 이화삼, 헤이그 밀사 이준, 순국독립지사 이홍섭, 제헌의원 이남규, 동양철학자 이을호, 국무총리 이낙연, 고용노동부장관 이기권 등의 근·현대 인물을 배출했다.
◇종가의 보물 이야기
종택은 ‘영광 이규헌가옥’(전남 민속문화재 22호)이라 부르며, 안채·좌측에 부조묘(사당)·사랑채·곳간채(방앗간)·연못·정원·솟을대문·내삼문·하마석 등이 잘 보존돼 문화자원이 되고 있다. 가옥에는 솟을대문이 두개다. 완풍대군의 13세 종손 이상호(1662~1718)가 지극한 효성을 인정받아 숙종 때 포상 받은 효자정려가 첫째고, 입구문과 출구문이 구분된 내삼문이 둘째다.
616년(광해군8년)에는 옆마을에 영당(현 묘장서원)을 건립하고 ‘영정’, ‘이응도’를 받들어 모시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황산대첩의 승전비는 1577년(조선 선조 10년)에 제작되었는데 이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어으나 1957년 잔여 파편을 모아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공의 ‘영정’, ‘회맹축’(공신이 단결하는 회맹제 제문과 참석자 66명 명단), ‘이응도’ 목판이 전남문화재 146호로 지정돼 있다. /서정현 뉴미디어본부장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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