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39)

6부 3장 유흥치 난(539)

정충신의 보고는 엉뚱하게 해석되었다. 정충신이 명의 장수를 음해한다는 모함이었다. 조정은 군량을 내놓으라는 유흥치의 협박을 받아들이자는 것이 대세였다.

“정충신 그 자 긁어부스럼 만드는 것 아닌가. 신임 유흥치 장수는 성질도 난폭하다는데 설 건드리면 더 큰 코를 다친단 말일세. 자칫하면 보복을 당할 수 있다니까. 모수(모문룡군대)에겐 원조를 하면서 유흥치에겐 하지 않겠다면, 그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우리도 명분이 없고 말일세. 그런데 그런 일관성없는 태도를 갖고 있는 자를 지휘관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낭패가 될 것 같으이.”

하지만 유흥치는 명 조정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후금과 불가침 조약을 맺어버린 것이다. 휴전에 조인하고 뒤켠으로 후금을 지원하는, 이른바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었다.

“유흥치란 자 명과 후금, 조선에 줄타기를 하고 있다. 모수보다 한 수 더 뜬다.”

후금은 후금 나름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후금도 벌써 유흥치의 계략을 간파하고, 동맹 파기를 통고했는데, 조선의 조정은 이런 동향을 모른 채 부모국에 충성하는 것만이 조선이 사는 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하들은 살 수 있는 방법일지 몰라도 조선은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때 다행히도 평안감사 김시양의 장계가 조정에 올라왔다. 김시양은 유흥치가 1636년 4월15일 명나라 도사(都事) 유흥치가 투항해온 서역의 부족 달족을 인솔해 난을 일으켜 부총병 진계성과 유능학 부장들을 살해하고 가도의 전권을 장악했다고 보고했다. 원숭환의 예하 심세괴는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자기 딸을 유흥치의 첩으로 보내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으며, 심세괴를 통해 첩보를 확보한 뒤 후금과 내통하여 조선을 침략한다는 것이었다. 김시양의 첩보는 정충신의 보고 내용과 다르긴 했으나 유흥치의 침략 야욕은 조선반도에 이를 것이라는 내용은 같았다.

임금은 철산 앞바다에서 유흥치를 칠 전략을 세우고 있는 정충신을 긴급히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문무백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어전회의가 열렸다.

“대신들과 비변사, 당상들을 소집한 것은 유흥치가 워낙 토색질을 한다길래 그 여부를 살피고, 대책을 세우고자 함이오.”

왕이 개회를 선언하자 좌의정 김류가 나섰다.

“유흥치가 주장을 살해했으니 그들의 군중에는 유흥치에 재빨리 붙는 자와 붙지 않는 자로 양분되어 있을 것입니다. 파가 나뉘니 일부는 오랑캐에게 투항하려 할 것이고, 유흥치는 민심을 돌리고자 달족을 내세워 조선국에 호령하며 침략해올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신은 유흥치를 토벌하는 것이 후환을 막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이조판서 정경세도 가세했다.

“옳습니다. 가도 섬 안에 있는 무리의 마음이 유흥치에게로 돌아가기 전에 그를 토벌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에 정충신 부원수가 가도 앞바다에 진출했으니 정충신이 토벌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낫겠구먼.”

상감의 뜻이 정해졌지만, 김류가 이의를 달았다.

“토벌사령관으로는 이서(李曙)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을 믿기란 지극히 어려운 것이므로 이서가 아니고는 난국을 헤쳐나가기란 불가합니다.”

정충신을 불신하거나 업신여기는 태도가 분명했다. 그러자 해창군(海昌君) 윤방도 가세했다. 윤방은 영의정을 역임한 윤두수의 아들로 그 역시 중책인 판중추부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인조의 피난을 주장해 강화에 호종한 사람으로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다.

“과인은 해창군 윤방의 능력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가 노쇄했음을 민망히 여기는 바이다.”

왕의 생각을 간파한 윤방이 나섰다.

“마마께옵서 신을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비록 몸이 병약하지만 죽을 곳이라도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정충신 장수도 토질병으로 고생한다고 하니 신이 나설만하다고 생각되옵니다. 하지만 직업군인과 문관의 차이가 있을 것이온즉, 문관인 신은 비바람 눈보라에 먼저 쓰러질 것이 염려되며, 정충신 부원수는 강단있는 몸을 야전에서 단련했으므로 나라를 위해서라면 그가 적임자이옵니다.”

상감이 정충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흥치를 물리치고, 가도를 빼앗고, 명나라와 후금을 안정시킬 수 있겠는가.”

“수군 3000명으로 하여금 가도로 진격하여 그곳의 배를 모두 불살라버리면 적도들을 전부 생포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의 문제는 그 다음에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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