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 걱정하는 척, 해결하는 척.
이민철((사)광주마당 이사장)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내 인생에 중요한 각성과 전환을 준 사건은 세월호 참사다. 이 사건에서 내가 받은 가장 강렬한 인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퍼포먼스’다. 헬기가 몇 대 뜨고, UDT 잠수대원 몇 명이 작업을 하고, 해양 경찰이 어떻고 등등 얼마나 요란했던가.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몇 년의 과정 또한 수많은 퍼포먼스로 가득했을 뿐, 무엇이 해결되었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아는 척, 걱정하는 척, 해결하는 척’이라는 화두가 생겼다. ‘나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나? 정치와 사회운동이 그렇게 잘못가고 있지 않나?’ 하고 질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일을 할 때마다 강박적으로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묻게 되고, 수긍이 되지 않으면 ‘좀 더, 좀 더’ 하며 마음을 채근하게 된다.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는 세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기 때문에 자기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만큼 뿌듯한 보람도 있고, 일부는 어느 정도의 권력도 갖게 된다. 하지만 날마다 성찰하지 않으면 좋은 일하고 있다는 마음에 관성적으로 일하며 남 탓만 늘어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가 되어 망가지는 경우를 흔하게 보아왔고, 앞으로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최근 그레타 툰베리의 말과 행동을 접하며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그레타 툰베리와 청년들은 기성 세대에게 아는 척, 걱정하는 척하지 마라고 한다. 진짜 알고 있다면 그렇게 아무 문제도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과 각국 정부에 제발 해결하는 척 쇼하지마라고 비수를 던진다. 쇼들이 넘쳐나서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3월 4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 기후법안을 발표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발표에서 “유럽 기후법안은 향후 30년 동안 우리의 나침반이 될 것”이고 “우리가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모든 길에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며, “국제무대에서 기후 리더로서 유럽의 위상을 확인할 것이며 우리의 많은 협력자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발표에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운동의 상징이 된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초대했다. 동의와 지지를 통해 국제 무대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유럽의 지도력에 힘을 얻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EU 집행위원회의 기대와 달리 그레타 툰베리는 유럽 기후법안을 단호하게 비판했다. “EU는 기후변화 방지에 앞장서는 국가인 척하는 것을 중단하라”고도 했다. 툰베리의 비난에 EU 집행위는 오는 9월까지 재검토를 거쳐 2030년까지의 중간 목표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EU의 기후법안과 기후정책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레타 툰베리와 청년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이라는 평가 기준이 아무 의미 없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근본적이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말이겠다.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이다. 후보들의 말과 공약을 살피다보면 답답함을 넘어 절망을 느낄 때가 많다. 곳곳에서 위기와 절규가 터져나오는데 정당과 후보들은 너무 한가하다. 기후위기 문제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극단적 양극화, 빈곤, 무너진 시민경제, 정신 건강 문제, 일자리, 교육문제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런데 이번 선거도 편가르기 싸움만 하다가 끝날지 모르겠다. 공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토론은 들리지 않고, 선거 구도를 짜고 국민들을 적대적 편싸움에 동원하는 나팔소리들만 요란하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어느 편이 이기든 기득권은 커지고, 나팔소리에 동원된 국민들의 주머니는 탈탈 털릴 것이다. 그리고 또 다음 선거에 편싸움의 나팔 소리는 울리고, 분노한 국민들은 광장과 SNS에 남은 돈과 시간을 쏟아부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에게 기대와 희망을 걸 수 있을까? 그레타 툰베리와 같이 새로운 감각과 활력을 가진 젊은 주체들이 판을 움직여줄 수 있을까? 책임 회피 같다. 근거도 없는 막연한 기대다.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기엔 ‘결사’운동을 통해 주체와 해법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에게도 새로운 ‘결사’가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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