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43)

6부 3장 유흥치 난(543)

“전한 바에 따르면, 전라도 수군이 옹진반도로 상륙했다고 합니다. 벌써 작전에 들어간 것입지요.”

“작전에 들어가?”

“네. 육지에 있는 첨방군의 연락을 받고 전라도 수군들이 하륙(下陸)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고향 사람들이라 미리 연락이 닿은 모양이었다.

유흥치는 육로가 험하고, 수레에 곡식을 운반해오는 데도 양이 제한되어 있어서 배로 실어올 요량으로 황해도 일대에 부하들을 보내 곡물을 운반해 오도록 상륙시킨 것이었다. 예로부터 옹진반도는 평야가 드넓어 양곡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었고, 배를 가지고 가면 한꺼번에 수백석의 식량을 실어올 수 있었다. 약탈한 양곡을 주둔지인 피섬(가도)으로 옮겨가면 최소 몇 개월을 버티는 군량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만(灣)에 정박해 있는 적선들을 모두 태우겠습니다.”

막료장이 말하자 정충신이 다르게 명했다.

“아니다. 노획해라. 전리품이다. 돛대에 깃발만 바꿔 달면 우리 수군의 배가 아닌가.”

적의 배에는 한두 명씩 사공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들을 바다에 수장시키는 데는 그리 큰 힘이 들지 않았다. 이들을 제압하고, 손쉽게 여섯 척의 배를 노획했다.

“적군이 승선했다면 한 척당 대여섯 명씩, 모두 40명 정도 탔을 것이다. 지금 육지로 나가 탐학질을 하고 있을 것이니 뒤를 쫓아라.”

마을들을 하나씩 더듬어가는데 고개 넘어 해당화가 피어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적병의 약탈이 자행되고 있었다. 적병들은 노파를 비롯해 부녀자, 열서넛 먹은 소녀들까지 헛간이건, 고샅이건 끌고 가 눕혀서 욕정을 채우고 있었다. 일을 끝내면 다른 놈이 덤벼들고, 그러는 한편으로 집집의 광에서 식량을 자루에 담아 운반하도록 남자들을 협박하고 있었다.

“못된 놈들아, 이것이 무슨 짓이냐. 천벌을 받을 놈들아, 물러가지 않겠느냐.”

이렇게 절규하던 노파가 손녀딸을 능욕하는 적병 등짝을 낫으로 찔러죽였다. 망을 보고 있던 적병이 대번에 달려들어 노인을 창으로 찔러죽였다. 외마디를 지르는 소녀도 창으로 찔렀다.

“청군이 훑어가더니 이번에는 명군이 도륙을 하는구나. 이놈들아 내 딸 내놓아라, 내 딸...”

한 여인이 흙바닥에 주저앉아 호미로 땅을 계속 내리찍으며 넋나간 사람처럼 넉두리를 하는데, 적병이 그녀 상체를 잡아 끌고 헛간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여인이 몸을 비틀거리며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녀가 든 호미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정충신은 날래고 용맹스러운 군사를 뽑아서 학익진(鶴翼陣)을 만들어 마을을 압박해 들어갔다. 고샅길로 압박해 들어가자 적병들이 위기를 직감하고 마을 사람들을 칼로 위협해 세우고 버텼다.

“살려주시어요.”

인질이 된 소녀가 눈물을 흘리며 애처럽게 호소했다. 그녀의 아랫도리는 벗겨져 있었다.

“두 조는 뒤쪽으로 침투하라.”

정충신이 진을 친 병사 두 조를 내보냈다. 그는 매복전과 유격전에 능한 장수다. 광주 무등산에서 일찍이 익힌 전술이며, 그것으로 이치 웅치전투, 행주성 싸움, 독산산성 전투에서 전과를 크데 올렸다. 조금 후 사면에서 공격하는 형세니 적병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군사들이 이들을 뒤쫓아 모조리 목을 베었다. 스무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아군의 손실은 없었다. 다만 마을 사람들 셋이 희생되었다.

“나리, 적병이 산에 또 있습니다.”

마을 사람이 앞산을 가리켰다. 적병은 반씩 나눠서 활동하고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라.”

아군이 전방의 산으로 올라가자 적이 알고 호준포(虎?砲)를 발사했다. 뒤이어 화살과 돌이 비 오듯이 떨어졌다. 아군은 방패를 앞세워 계속 치고 올라갔다. 일몰이 가까워오자 적병들이 바닷가로 퇴각했다.

“한 놈도 남기지 말라. 밀어붙여라.”

적은 그들의 배로 돌아갔으나 배에는 이미 아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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