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옥 송원대 교수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당신이 느끼는 지금-여기
백현옥(송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딸아이가 볼멘소리로 “누가 얼마를 기부했건 기부한게 중요한거 아니야?”하며 잔뜩 날카롭게 이야기를 꺼냈다. 한참 온라인 상에서 뜨거웠던 ‘이시언’이라는 배우에 관한 이야기였다. 딸아이는 평소 그 배우의 연기를 좋아하고 예능에 나오는 모습 또한 매력있다며 종종 언급하고 했다. 그 배우가 코로나19사태에 도움이 되고자 100만원을 기부한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유명 연예인들이 경쟁하듯 1억, 2억을 내놓고 있지만 사실 남을 위해 내놓는 그 돈이 마냥 쉬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부터도 금액에서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비난과 조롱 속에서도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을 ‘백시언’이라고 칭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참 놀라고도 매력적이었다. 분명 누구보다 힘들고 지쳤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까지도 자연스럽게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굉장히 성숙해 보이는 태도였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평소에 여러 곳에 기부를 했다는 증거가 속속 나오면서 오히려 그를 비난하던 네티즌들이 무색해지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가 직접 밝힌 것도 아니고 기부를 받던 곳에서 나서서 인증을 해주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된 것이다. 늘 위안부, 국가유공자, 아동인권 등에 관심을 갖고 선행을 베풀고자 노력했던 그의 진가가 빛났다. 어쩌면 그 배우가 성숙한 ‘지금-여기’의 모습을 지닌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여기’는 상담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 중의 하나이다. 지금-여기의 개념은 쉽게 설명하면 모든 중심을 지금-여기에 맞춰 생각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나의 상처이든, 미래에 대한 불안이든, 어쩌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든, 그 일에 대한 설명보다 그걸 느끼는 지금에 초점을 맞추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잘 풀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듣고 보면 참 쉬운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시 과거로, 불안으로, 상처로 돌아가게 되니 말이다. 눈을 간질이는 햇빛,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 정수기에서 물을 받는 소리, 적당한 온도와 그 물이 식도를 넘어가며 느껴지는 느낌….

언제나 내 옆에 있는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여기에 집중해야만 인식되는 감각들이 있다. 이 글을 쓰고자 마음먹은 아침, 잠깐의 시간을 갖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자 하니 느껴졌다. 정말 늘 내곁에 있는 중요치 않는 것들이라 생각 했던 것들이 훅, 행복함으로 다가왔다. 아,애들이 말하던 소확행이 이런거구나.

청소년 상담을 마무리하고 난 후 가끔, 학부모님들이 불평을 할 때가 있다.

“선생님, 우리애가 싸가지가 없어졌어요. 전에는 안그랬는데, 막 반항하고, 그런다니까요?” 라고 말이다. 내막을 살펴보면 우리의 청소년들이 ‘지금-여기’의 중요함이 오로지 ‘나’에게 집중되었을 때 생기는 일이 많았다. 이는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나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나를 되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익숙치 않는 상황에 불편한 것은 어른들이겠지.

한편으로 걱정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안그래도 개인주의 사회에, 아이들이 나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하는 앞선 걱정들이다. 성숙한 ‘지금-여기’는 바로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 보는 것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의 마음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내 마음만을 펼쳐 놓고 알아달라고 하기보다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을 살피면서도 내 마음을 풀어낼 방식을 적절하게 찾는게 제일 중요한 것이다.

상담을 하는 나에게도 가장 어려운 것이 어쩌면 오늘 풀어낸 ‘지금-여기’이다. 늘 주변은 살피고 돌보면서도 나에게는 소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늘부터는 마음의 동그라미를 그려보고자 한다. 나를 살폈을 때 한번, 그와 함께 주변을 살폈을 때 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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