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45)

6부 3장 유흥치 난(545)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데, 고향 사람을 만나니 그지없이 반갑소. 그래, 흥양이 고향이라고 했소?”

“그렇습지요. 소인은 정 장군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흠모하고 살았지라우.”

“나보다 위대한 위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를 흠모하다니, 당치않소. 나는 임진란이나 정유난이나 관서지장과 관북지방 변경을 주로 지키고 있었으니 고향 사람들에게는 눈에 잘 띄지 않지요.”

“눈에 안보잉개 더 크게 보이지라우. 눈에 안보이면 눈앞에 훨씬 크게 상이 그려징개요. 소인은 애초에 실지로 장차 군인이 되리라고 생각했고만이요. 고향에서 그런 인물을 만났승개요.”

“고향에서 인물을 만났다고? 이순신 장군 이외에 또 훌륭한 군인이 있었습니까?”

“암만이요. 이대원 장군이라고, 스물한살에 녹도만호를 한 장수지라우.”

이대원은 1566년 평택 출생으로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으로 복무하다가 왜구가 빈번히 침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녹도만호로 부임했다. 부임한 얼마후 그는 침투한 왜구를 척살하고 왜장을 사로잡았다. 그의 용맹성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청호’라는 별호를 받았다.

가을철,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손죽도에 들어가 싸우다 적장에게 사로잡혔다. 적장은 그를 잔혹하게 다루었다. 앞서 왜장을 사로잡아 처치한 것에 대한 복수였다. 이대원은 돛대에 묶여 갈고리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찍혀서 죽었다. 죽을 때까지 항복을 거부하고 저항했다. 그는 손가락이 잘린 가운데서도 피로 시를 써서 부하들에게 왜란을 대비하라고 알렸다. 이때 그의 나이 21세였으며, 그가 우려한대로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소인은 그때 열 두살이었지요. 그를 찾아 활쏘기를 배우고, 말달리기를 구경했지요. 그러면서 소인도 저렇게 멋진 군인이 되리라고 생각했지요. 왜란이 터지자 군에 들어갔고,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었지요. 장군의 절도있는 훈련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 상도 받았지요.”

“장군을 함부로 범접했다는 것인가?”

“암만이요. 거품도 좀 있제만 군졸들은 편하게 지냈지라우. 따지고 보면 이순신 장군은 휘하의 막료장과 부장, 중군장, 병사들이 떠받들어서 만들어진 상이지요. 전라도 군사들이 만들어준 영웅이랑개요. 정운, 송희립 같은 장수가 받쳐주었지요. 그러니 한 인물 훤하게 나온 것입지요.”

“정운, 송희립 장수요?”

“하동 정씨 정운 장수 모르시오? 같은 정씨일텐디?”

“나는 윗대에서 분파되어 금성정씨가 되었소.”

“좌우당간 그는 훌륭한 전략가지라우.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이 되어서 옥포해전, 당포해전, 한산도대첩에 참전해 전과를 올린 최고의 두뇌였당개요.”

정운은 무과 급제한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선봉장 겸 참모장이 되어 초기 해전에 빠짐없이 참전했다. 정운이 전사한 뒤 정걸이 참모장으로 위촉되었다. 정걸 장수는 70대 후반이었다.

“노쇠했기 때문에 빠릇빠릇한 젊은 병사가 수발해야 한다고 해서 소인이 차출되었지요.”

정걸은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절충장군, 전라도 병마절도사 등을 지내다 임진란이 나자 전라좌수영 조방장으로 임명되었고, 이때 조선 수군의 주력 전선(戰船)인 판옥선을 만들고 화전, 철령전 등 무기를 제조했다. 해전이 치열할 때, 해상 지형과 물때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제공했다. 이순신 함대의 합포해전, 부산포해전을 숭리로 이끌었다.

“이순신이 있는 곳에 전라도 참모진이 있고, 그 휘하에 전라도 병사가 있으니 전쟁에 나갈 때마다 숭리하지요. 이순신은 정운, 정걸 두 장수를 늘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전라도에서는 정유재란이 임진왜란보다 더 몰강스러웠지요.”

“호남지방이 크게 유린되었지요?”

“왜놈들이 모지락스럽게 밟았지요. 임진왜란 시 호남군대에 혼이 나고, 이순신의 해군과 권율의 육병(陸兵) 때문에 패배했다고 보고, 그놈들이 정유년 재침시 호남지방만을 집중 타격했지요. 임진란 때는 한양의 대궐만을 향해 진격했자면, 정유재란은 복수심으로 호남지방만을 표적삼아 쳐들어왔던 것이랑개요. 그러나 우리가 두 손 놓고 있을 사람들이요? 또다시 허벌나게 조사부렀지요.”

“그런데 어떻게 첨방군이 되었소?”

정충신이 묻자 그가 회한에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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