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47)

6부 3장 유흥치 난(547)

정충신은 밀서를 두 통 썼다. 명나라 조정과 후금에 보내는 서신이었다. 명나라에는 다음과 같은 긴 사연을 썼다.

명나라의 병부시량이자 요동순무 원숭환이 모함을 받고 능지처참을 당하자 요동을 방위하던 병사들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어 장수들이 잇달아 후금에 투항해버렸다. 원숭환은 누르하치를 물리쳤던 지략과 용맹이 있었지만 음해에는 끝내 이기지 못했다. 원숭환은 영원성 전투에서 누르하치를 물리친 명장이었다. 누르하치는 이 전투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런 원숭환을 죽인 것은 명나라 황실의 대표 환관 위충현이 조직한 엄당 세력이었다. 엄당은 모문룡 등 부패 군인들과 지방 수령들로부터 뇌물을 상납받아 엄당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중 상납액이 상위권인 모문룡이 원숭환에게 처형되자 그는 명 황제 희종의 총애를 받은 것을 무기로 매일 원숭환을 씹어댔다.

“황제 마마,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용장을 사사로운 질투심으로 잡아다가 황제의 재가도 없이 처형했습니다. 국법을 어겼을 뿐아니라 후금과 내통을 한 자를 그대로 둘 수 없나이다.”

무능한 황제는 간신배의 현란한 혀놀림을 달콤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를 뽐내기 위해 요란하게 처형해버린 것이다.

그 후 유흥치가 모문룡의 뒤를 이어 가도에 들어왔으나 그는 모문룡보다 몇 수 더 뜨는 악질이었다. 밤마다 주색에 빠지는 한편으로 밀수에 손을 대고, 후금과 내통해 첩자 노릇을 할 뿐, 군인의 길을 걷지 않았다.

정충신은 이런 내막을 고스란히 밀서에 담았다. 또다른 밀서는 후금에 보내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유흥치가 후금의 아우처럼 행세하나 세를 불리면 반드시 공격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밀서 때문인지 후금의 사자가 당장 정충신의 진중으로 찾아왔다.

“우리에게 첩서를 보낸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정충신이 대답했다.

“바른 길로 가라는 뜻이다. 유흥치는 결코 후금을 도울 자가 아니다. 그는 한갓 강도이고, 비적일 뿐이다. 그런 자에게 미혹되어서는 안된다.”

“너희 나라가 남의 나라 일에 신경을 쓸 처지인가. 조선은 본디 명을 부모국으로 모시고, 사대를 통치의 근간으로 삼고, 인조가 임금이 되면서부터는 노골적으로 우리나라에 적대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래서 귀하의 편지를 납득할 수 없다.”

“신하라고 해서 뜻이 다 같을 수는 없다. 애국하는 방법이 차이가 있듯이 외세를 보는 시각과 관점도 다를 수 있다. 나는 본시 후금과 사적 인연을 갖고 있다. 누르하치 자제들과도 교분이 있고, 나의 선왕(광해) 시절 그의 명을 따라 후금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왕이 바뀌었다고 해도 후금과의 관계를 끊기보다 강화시켜 나가자는 주의다.”

“왜 그런가. 단순히 사적 인연 때문인가.”

“아니다. 인접국으로서 갈등보다 의를 취해 선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장의 이해로는 중국의 동북지방을 장악한 후금과는 국경선을 2천리나 맞대고 있다. 그런 나라인데 문서로만 남아있는 부모국과 공리공담에 빠질 수 없다. 실리가 중요하다. 그리고 후금은 떠오르는 태양이다. 지는 해를 붙들고 있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나.”

“유흥치가 목안의 송곳이다. 그래서 밀서를 보낸 것이다. 그를 잡기 바란다. 그를 버리는 패로 삼아야 조선도 살고, 후금도 살 것이다.”

그는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갔다. 정충신은 명나라가 유흥치를 소환하면 되지만, 후금이 먼저 목을 베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뒤이어 평안감사 김시양에게 밀서를 보냈다.

-우리가 등주(登州:중국 산동반도의 항구)로 통하는 해로를 끊으려 공격해도 유흥치는 달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유흥과 탕금의 유혹에 빠져있습니다. 대병(大兵)이 섬 안으로 들어간 뒤 적 유흥치가 장자도에서 자리를 잡고 버틴다면 우리가 진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본도의 병선이 작전을 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귀 감영의 병선과 군병의 수효와 병기의 수량을 적어서 비밀리에 보내주기 바랍니다. 병력 배치와 작전을 짜겠습니다. 본관은 해주로 가서 장연의 배가 모인 곳에 이르러 사열을 받고, 우리 배가 장산곶을 지나는 것을 본 다음 안악으로 가서 송화로 나갈 것입니다.

정충신은 선단을 꾸려 해주 앞바다를 떠났다. 신두원의 배는 앞서 떠났다. 총융사 연락 군교가 말을 몰고 달려왔다.

“총융사 나리께서 왜 보고가 없느냐고 노여워하십니다.”

“알았다. 대기하라.”

정충신은 방으로 들어가 이서 총융사에게 서신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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