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51)

6부 3장 유흥치 난(551)

숨어있던 적군이 수기로 수병들을 지휘하는 신두원을 겨냥해 조총을 쏘아버린 것이다. 뒤이어 쓰러진 신두원의 갑옷에 불화살이 날아들어 불이 붙었다. 그가 바둥거리자 지켜보고 있던 부하 둘이 뛰어가 온 몸으로 그를 덮쳤다. 모래로 몸을 덮자 불이 꺼지고 연기가 피식거리며 피어올랐다.

연기에 휩싸인 신두원은 숨을 거칠게 몰아쉴 뿐, 움직이지 못했다. 부하들이 그의 옷에 붙은 잔불을 마저 끄고 정충신 앞으로 그를 부축해왔다. 다행히도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신두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장군, 나는 암시랑도 안하요. 시방 적군들이 지네들 배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달려오고 있소. 어서 가서 물리치쇼.”

군사들이 당황했으나 정충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두원 장하다. 걱정하지 말라. 절대로 버려두지 않겠다. 후송해 꼭 살려내겠다.”

“장군, 내가 죽을깨미 그러시오? 암시랑도 안하요. 그러니 유언도 안할라고 하요. 고향에 내 자식들이 있는디 고것들한티 유언할 생각이 없단 말이요. 잘 클 것이요만 살아돌아갈틴디 뭐하다고 유언을 할 것이오. 대신 지금 급항개, 어서 가서 적들을 소탕하란 말이요! 저놈들이 해안 마을 앞에 홍백기를 걸어놓은 곳을 향해서 기습하란 말이오!”

그 말을 남기고 신두원이 고개를 옆으로 젖히더니 거짓말같이 숨이 멎었다. 정충신이 그의 뜬 눈을 손으로 쓸어 감겨주고 명했다.

“너희들 동요하지 말라. 적병들이 달려오고 있다. 적병들이 갯가 홍백기 앞에 이르면 일망타진하라.”

1진과 2진이 마을로 들어가는데, 그 사이 적선 세 척이 포구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 척은 화염에 싸인 채 도주하고 있었고, 앞선 두 척은 돛을 올리자마자 북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모든 군선은 출진하라. 저것들을 잡아야 한다.”

정충신이 병선에 승선하며 외쳤다. 수륙 양동작전을 펴야 하는 것이다. 해안에 흩어져 있던 아군선이 일제히 적선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적선이 달리다가 갑자기 90도 각도로 꺾어서 해안 마을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적들은 마을 앞 하늘높이 휘날리는 홍백기를 향해 노를 젓고 있었다. 응원부대와 합류할 모양이었다.

“포수와 궁수, 창병, 힘껏 날려라!”

일제히 조총알과 활 살과 창이 적선을 향해 날아갔다. 적병들은 노략질한 재물을 몸에 가득 챙기고 있었던지라 움직임이 둔했다. 간밤 술에 진탕 취해 아낙네들을 욕심껏 겁탈한 뒤끝이라서 행동 또한 굼떴다. 그런 중에도 솜씨가 있었던지 능란하게 배를 다루었다. 적선이 바닷가에 배를 대더니 기다리고 있던 적병 댓명을 태우고 부랴부랴 도주하기 시작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적병들이 혼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추격하라. 민간인 포로도 잡혀가고 있다.”

달아나는 적선을 추격해 아군선을 바짝 붙여놓고 병사들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차레로 적병의 목을 베었다. 포로로 잡힌 여자들도 구출했다.

“배 한 척을 놓쳤습니다.”

척후장(돈대에 올라서서 적의 동정을 살피는 종6품 무관직)과 그에게 딸린 찰방이 와서 보고했다.

“그것보다 포구 뒤편에 숨어있는 적선이 문제올시다.”

과연 초도와 석도 사이의 물골에 적선이 열 척이나 집결해 있었다. 그 배를 타고 온 적병들은 모두 상륙했다. 내륙의 종심 깊숙이까지 들어가서 약탈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적선에는 사공들만 타고 있을 것이었다.

정충신은 휘하 장병과 전선(戰船)을 점검한 뒤 전대(戰隊)를 재편성했다. 전선과 협선(挾船), 포작선(鮑作船)을 모으니 스무척이었다. 그런데 적선들이 갑자기 내빼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아군선을 유인하는 전략 같았다. 분명 무슨 덫을 놓은 것이었다.

“모두 뭍으로 상륙하라.”

“왜 추격을 멈추려 하십니까.” 부장이 물었다.

“저것들은 이곳 물길을 알고 우리는 잘 모른다. 자칫하면 우리가 물길에 쳐박힐 수 있다. 싸움만이 능사가 아니다. 전술에는 능히 고무줄처럼 탄력이 있어야 한다.”

군사들이 상륙하자 정충신이 다시 엄숙히 말했다.

“신두원의 넋을 위로하겠다. 그는 전라도 흥양에서 여기까지 와서 나라를 위해 죽었다.”

정충신은 부장을 시켜 해안 마을에서 해신굿을 하는 당골네를 데려오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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