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안 의사 큰 뜻에 밝은 달도 맑게 우리나라 비추네’
의거 당시 추모 漢詩 3편 발굴
故 한성택 한학자 지어…후손 보관
최태열 한시연구가가 찾아내
‘안중근’ 제목 오언·칠언절구
안 의사 의거·순국·민족혼 담아

고 한성택의 유고집에 수록된 ‘안중근’한시(사본)./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안중근(安重根 )

대재안의사(大哉安義士)

안 의사의 큰 뜻에

명월해동청(明月海東淸)

밝은 달도 우리나라를 맑게 비추네

기묘수중물(奇妙水中物)

손에는 기묘한 물건을 들고

독성인부성(獨成人不成)

홀로 이루는 것은 사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일이네
 

고 한성택의 유고집 표지(사본).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빼앗긴 대한제국의 국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다 순국한지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앞두고 안 의사의 항일정신을 기리는 한시 3편이 광주에서 발굴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한시는 당시 안 의사의 의거와 순국 소식을 들은 지역 한학자가 지은 것으로 안 의사를 향한 우리 민족의 정서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

해당 한시는 모두 ‘안중근’이란 제목으로 지어져 율산 고 한성택의 한시 유고집에 실렸다. 이 3편의 한시가 쓰여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시대 흐름을 미뤄봤을 때 오언절구 시가 가장 먼저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언절구 시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의 높은 뜻이 우리나라를 밝게 비추고 있다고 묘사돼 있다. 특히 안 의사가 사용한 권총을 ‘기묘한 물건’으로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고 한성택의 유고집에 수록된 ‘안중근’한시(사본).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칠언절구로는 두 편이 지어졌다. 두 편의 한시는 안 의사의 의거 순간과 순국 후의 상황을 각각 다뤘다. 시간 상 앞서 쓰인 것으로 추측되는 시에서는 1909년 10월 26일 안 의사가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의거에 대한 민족 긍지가 담겼다. ‘일발 포성(총성)이 천지에 진동하니 죽을 곳에서 죽음으로 그 이름을 얻었구나’는 표현에서 보듯 안 의사의 의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안중근

해동명월조인청(海東明月照人淸)

우리나라에 밝은 달이 국민에게 맑게 비추고

대의당당소원성(大義堂堂所願成)

큰 뜻을 당당하게 행해 소원을 이루리라

일발포성천지동(一發砲聲天地動)

일발 포성(총성)이 천지에 진동하니

사어사지득기명(死於死地得其名)

죽을 곳에서 죽음으로 그 이름을 얻었구나

또 다른 칠언절구 시는 안 의사가 중국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뒤 지어진 듯하다. 이 시에서는 일제가 안 의사의 시신을 수습할 수 없게 하자, 동포들이 각지에서 그를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상황을 묘사했다. ‘안공의 의지와 기개는 달과 같이 맑아서 어려운 일을 능히 해내고 큰 뜻을 이루었네’에서 보 듯 민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안 의사의 삶을 칭송했다.

-안중근

안공지기월동청(安公志氣月同靑)

안공의 의지와 기개는 달과 같이 맑아서

난사능위대의성(難事能爲大義成)

어려운 일을 능히 해내고 큰 뜻을 이루었네

유수망망산적적(流水茫茫山寂寂)

흐르는 물은 아득하고 산은 고요하기만 한데

사림행사역유명(士林行祀亦留名)

사림들이 제사를 모시니 또한 명성이 여기에도 머무네
 

집필자 한성택 씨의 막내 아들 한태석 씨 사진.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이 한시들은 10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집필자 한성택 씨가 자식들에게조차 해당 시에 대한 언급을 일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필 당시에는 조선의 독립과 연관된 내용을 한마디만 해도 처벌받았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이름은 금기어와 같았다. 그렇게 잊혀진 채 백년이 흐른 뒤에야 최태열 한시연구가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최 연구가는 한시 집필자의 막내아들 한태석(91) 씨의 광주 동구 자택 서재를 탐방하던 중에 우연히 찾아냈다. 올해 안 의사 순국 110주년을 앞두고 운명 같은 조우였다.
 

‘안중근’한시의 집필자인 한성택 한학자 모습.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한성택 씨는 1888년 순천 별양면에서 출생해 평생을 학문에 열중한 한학자이자 시인이다. 그는 안 의사와 같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74세 별세 때까지 “조국의 힘은 지식에서 나온다”며 오로지 학문을 닦음에만 집중했고, 순천 향교 도유사 등 역임해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또 행여 허튼 욕심이 생길까 평생을 물욕을 멀리하며 살았다. 기근이 들 때면 본인의 곳간을 열어 이웃에게 쌀도 나눠주고 좋은 일이 생기면 축시를 지어주는 등 베풀었다. 자식들에게는 “상부상조하며 욕심부리지 마라”고 입이 닳도록 당부했다. 특히 일제 관료들에게 서기직을 제안 받았을 땐 일제의 녹봉을 받을 순 없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안중근’ 한시를 발굴한 최태열 한시연구가가 고 한성택 씨의 유고집(사본)을 살펴보고 있다.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발굴자 최태열 한시연구가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0주년을 앞두고 의미 있는 한시를 발굴해 매우 뜻깊다”며 “우리는 국경일 외에도 안 의사를 비롯한 순국선열의 뜨거운 애국정신을 되새겨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k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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