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53)
6부 3장 유흥치 난(553)

“참으로 영험한 당골네군.”

정충신이 뜰로 내려서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수그린 무당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그는 목이 달아났을지 모른다. 여인이 말했다.

“장군 나리, 제 딸 보생이를 구해주십시오. 간밤 꿈에 보생이를 보았나이다. 온천군에 있는 것을 보았나이다. 용강온천입니다.”

“용강온천?”

“거기에 감금되어 있는 것을 보았나이다. 누가 알려주었는데 사실이군요. 구해주세요.”

“알겠소. 부하의 혼령을 극락으로 보내준 것만도 고마운데, 내 목숨까지 부지하게 했으니 은혜를 갚아야지.”

“쇤네가 천 것이라 말을 올리지 못했으나 쇤네를 소첩으로 받으셔도 됩니다. 꼭 돌아오소서. 나리의 무운장구를 빌겠나이다.”

“사사로운 말을 나눌 새가 없소. 나중 볼 수 있을지 못볼지는 알 수 없으나 딸은 구하겠소. 나는 지금 떠나오.” 그가 서둘러 걸음을 떼었다.

“소첩은 매일 새벽 정화수 떠놓고 빌겠나이다. 꼭 돌아오소서.” 애절하게 말하는 여인을 뒤로 하고 진에 이르니 숙소가 엉망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사공 박가와 홍가가 달려와 보고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적병이 습격하고 자취를 감춰버렸당개요. 장군이 자리를 비워서 망정이제 하마터면 난리날 뻔했습니다. 무작스러운 놈들, 그렇다고 우덜이 내버려둘깨미? 다 처치했소.”

부장이 다가와 말했다.

“유흥치의 소행입니다. 그자가 주사원수를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처치하려고 세작과 함께 저격병들이 스며들어 왔습니다. 저희는 장군께서 신당에 계신 것을 알고 무방비 상태로 잠을 잤습니다. 아군 피해는 두 명의 초병과 한 명의 군교가 목이 달아났을 뿐, 여타의 피해는 없습니다.”

“적의 동태에 관한 정보는 없느냐.”

“적병 한 놈을 생포했습니다. 심문한 결과 유흥치 군 지휘부가 용강온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거기서 저격병을 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장 출진 준비하라.” 전라도 수군 선단이 대오를 짠 다음 포구를 떠났다.

“야음을 틈타 공격할 것이다.” 밤이 되어서 수군 선단은 용강의 바닷가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다. 군교의 지휘에 따라 수병들이 소리없이 움직였다. 정충신이 전령을 불렀다.

“지계최 군사가 대동군에 모여있다. 우리가 용강온천을 습격하면 배후에서 응원군으로 지원하도록 군사 100을 보내도록 요청하라.”

명을 받고 전령이 말을 타고 북으로 달리고, 정충신은 군사를 모아 온천을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밤이 깊도록 온천장은 흥청거렸다. 궁궐같은 집의 불빛에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이곳저곳에서 고기와 술을 놓고 주흥에 빠진 명 군사들이 벌거숭이가 된 채로 왁자하게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정충신은 불빛에 따라 군사가 움직이도록 지시하고, 뒷담을 넘어 언덕에 올랐다. 군사들이 공격 대오를 갖추자 정충신이 횃불을 휘둘렀다. 군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순식간에 온천장으로 뛰어들었다. 정충신은 뒷문을 뚫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앞문으로 들어온 군사들이 주안상을 뒤엎고 벌거숭이가 되어 주흥에 빠져있는 남자들을 베었다. 옷을 벗은 무방비 상태인 적군은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보생이가 누구냐?” 정충신이 피로 얼룩진 방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귀퉁이에서 아랫도리를 가린 처녀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가느다랗게 말했다.

“저여요.”

“빨리 옷을 입으라. 그리고 남자들은 누구냐?” 그러자 다른 여자가 나섰다.

“유흥치의 아우들인 유흥패, 유흥사입니다.”

이것들이 형 이름으로 분탕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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