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56)
6부 3장 유흥치 난(556)

지계최 곁에 서있던 조견이 나섰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구먼요.”

“방법이 하나 생각났네. 화약고를 지키는 자들이 그 화약을 몰래 팔아먹고자 하여 화약 백근의 값을 은 열일곱냥에 팔아치우고 있다고 하네. 만일 은화를 지불하면 화약을 팔 것인즉, 이것들을 사들이기로 하겠네.”

“그러면 은화를 어떻게 조달합니까. 적도들은 은화를 보여주지 않으면 화약을 내놓지 않을 것은 빤한데요. 설마 조정에서 은화를 보내주겠습니까.”

기대난망이라는 뜻이다. 국고의 은화를 착복하여 유흥비로 쓸망정 나라를 위해 풀 리 없고, 개인 돈은 더더군다나 내놓을 리 없다. 웬만한 군교들은 부패한 조정을 불신하고 있었다. 군사를 이끄는 힘은 오직 현장 지휘관의 역량과 덕성 때문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어쨌든 화약 절반을 빼내야 폭파시켜도 백성들이 다치지 않을 것이야.”

“조정에서는 저들과의 거래나 매매를 금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 생각이 있으니 그대들은 돌아가시오. 해안선을 잘 지켜야 하오.”

그들이 육지로 돌아간 뒤 접반사 나덕헌의 보고가 들어왔다. 장산도의 유격 유흥패가 군량 수송선 여섯 척에 백금 2만냥과 군병 100명을 싣고 여순을 떠나 가도로 출항했는데 이중 세 척이 태풍을 만나 조난지경에 이르렀고, 다행히 파도가 잦아들었으나 이번에는 생각을 바꿔 귀대하지 않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장산도는 황해도 장연군의 반도 남쪽 끝 지역에 있고, 건너편에는 대청도와, 소청도, 백령도가 마주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그물 안으로 들어오는 물고기 신세였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있던 정충신이 전라도 군선의 노군장(사공 지휘관) 홍가와 박가를 불렀다. 그들을 가까이 오도록한 뒤 비밀작전을 말하고, 명토박듯이 명했다.

“유흥치 군선이 남하하고 있다면 가도와 석도 사이의 해상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해적선이다. 체포해도 무방한 것이다. 침몰시키지 말고 나포해오라.”

그들이 다섯 척의 선단을 이끌고 바다 가운데로 나갔다.

한편 병사들은 바다 위에서 오랫동안 지내다보니 지루하고 무료함을 이기지 못했다. 청충신은 이들의 사기를 고무시키기 위해 황해병사와 경기수사를 불러놓고 상금을 내걸어 전투훈련을 실시했다. 드넓은 간석지에서 펼치는 수군들의 공격 훈련은 정신을 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우수한 부대와 여러 기갑의 병사들을 뽑아 표창을 하는데 뽑힌 군병이 백오십이었다. 상품으로 무명 옷감을 등급에 따라 내렸다. 지금은 한 여름철이라 홑옷으로 지내도 무방하나 곧 겨울이 닥칠 것이니 병사들이 옷감을 나누어 겨울 제복을 만들었다.

바람이 드세어지기 시작했다. 폭우가 내리기까지 했다. 출병한 전라도 군선이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정충신은 산에 올라 횃불을 밝혀들었다. 다음날도 그랬다. 그런데 군선 세척이 풍랑을 헤치고 불을 찾아 들어오고 있었다. 홍가와 박가의 배였다.

“장군, 나머지 배들은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유흥치 군선 세 척도 침몰하고, 한 척은 우리 포탄에 격침되었습니다.”

“그러면 저기 다른 배 한척은 무슨 배인가.”

“유흥치 군선입니다. 재물이 실려있습니다. 나포해왔습니다.”

정충신이 적선에 올라보니 과연 은냥과 식량, 총포가 가득 실려있었다. 은화를 가졌다면 폭약을 산다. 비로소 안도가 되었다. 생포한 유흥치 군사는 셋이었다. 정충신은 적병을 각기 다른 방으로 하나씩 배치해놓고 심문했다.

“임진왜란 시 포로로 잡힌 왜병들을 살려주었더니 투항해서 항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너희가 순순이 응하면 살려줄 것이고, 원한다면 아군 군교로 임명할 것이다. 내 명을 따르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어차피 그들은 돌아가도 탈주병으로 몰려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각오한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교해주시오.”

“유흥치가 어디에 있느냐.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데 신출귀몰하는 인간인가?”

“명군, 후금군, 조선군에 쫓기니 변성, 변복을 하지요. 유오라고 행세하는 자가 바로 유흥치입니다. 때로는 아우인 유흥패로 행세하기도 합니다.”

“지금 어디 있다는 것이냐.”

“가도에 들어온 만량이란 자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여순에 있다고 하고, 장대추의 보고에 따르면 바다 가운데 선상에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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