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이성자(동화작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스크를 쓴 채 동생 손을 잡고 외출하는 해오를 만났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나이보다 키가 작고 깡마른 남자 아이다. 웃으며 인사하는 해오를 향해 “밥은 먹었니?”라고 물었더니, “지금 컵라면 사러가요!”하는 것이다.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각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해오 아빠, 엄마는 하는 일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일이 잦았다. 요즈음은 ‘코로나19’ 때문에 아예 올라오지 못하고 잡혀있는 것 같았다.

“해오야, 오늘은 나랑 같이 우리 집 가서 밥 먹을까? 내가 고등어 구워놨는데….” 말을 하다말고 아차! 했다. 문득 ‘사회적 거리두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오 동생 해미가 “오빠, 나는 고등어 먹고 싶어.”라며 반가워했다. 해오가 금세 휴대폰을 꺼내 자기 엄마와 통화를 하더니, 허락 받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오와 해미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요즈음 혼자 밥 먹는 게 너무너무 싫었는데, 웬 복이냐 싶었다.

부랴부랴 고등어를 데웠다. 곁에 바짝 붙어서 코를 큼큼거리는 귀여운 해미, “나도 밥은 할 줄 알아요”라면서 웃는 해오였다. 요즈음 ‘코로나19’ 때문에 손녀들이 보고 싶어도 만나는 것을 조심하고 있는데 정말 신바람이 났다. 냉장고에 들어있던 돼지고기볶음 등, 반찬이란 반찬은 다 꺼내어 밥상을 차렸다. “할머니,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아요?” 해오와 해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밥 먹는 일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난 때문에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된 음식을 챙겨먹지 못하고 인스턴트식품에 의존하는 아이들, 고용이 불안정해서, 아니면 너무 바빠서 닥치는 대로 허겁지겁 먹어야하는 청년들,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이리저리 무료 급식소를 찾아다니는 외로운 노인 등 먹어도 먹는 게 아닌 밥들이다. 그러니 금수저로 태어났건 흙수저로 태어났건 제대로 된 밥을 챙겨먹지 못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 모두가 이 시대의 안타까운 흙밥들인 것만 같았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해오나 해미는 무상급식 덕분에 제대로 된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사회적 거리두기’로 그마저도 힘들어지고 말았다. 학교를 계속 쉬고 있으니 아빠 엄마가 곁에 없을 때는 김밥, 컵라면, 떡볶이 등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쑥쑥 자라야할 나이에는 고기도 먹어야하고 과일도 먹어야 할 것인데…. 굶지는 않지만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없으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리고 한창 힘을 써야할 나이의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어떻게 세끼 밥을 해결하고 있는 걸까? 한 끼만 굶어도 어지럼증이 난다는 노인들. 무료급식소가 운영되지 않으니, 그 많은 노인들은 어떻게 밥을 해결한단 말인가?

해오와 해미를 보내놓고 당장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식당도 죄다 문을 닫는다는데 밥은 어디서 어떻게 챙겨 먹니?”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게요. 우리 어머니 밥걱정은 언제 끝나려나.” 아들이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밝은 목소리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세월이 흘러도 몸에 배어버린 밥에 대한 걱정, 이제는 떨칠 때도 되었건만 지구를 온통 뒤집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에 떨치기는커녕 겹겹이 쌓여만 가니 어찌할 것인가.

이럴 때일수록 안타까운 흙밥들이 거르지 않고 밥은 먹을 수 있어야할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형태로 식생활 지원활동을 벌이는 기관과 단체, 또는 현장에서 온갖 노력을 하는 봉사자들이 있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두렵기만 한 ‘코로나19’ 사이사이를 뚫고 도시락을 전달하는 등 진심어린 도움의 손길을 주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적지만 큰 힘이 되는 기부와 배려, 생활화 된 주변의 봉사활동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흙밥들이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 도와야할 일이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