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60)

6부 3장 유흥치 난(560)

서찰에 직접적으로 침략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유흥치는 명나라와의 군신 관계를 내세우면서 군사 이동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배가 없으면 수군은 단 한발짝도 나갈 수 없고, 무기도 꺼내 쓸 수 없다. 수군은 배가 활동이 근본이 되는 것이다. 배가 모두 사라져버렸으니 유흥치가 위협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그마저도 못미더웠던지 조선 조정에 밀서를 보냈다.

-정충신은 후금과 연합해 나를 치려 하고 있다. 내가 가도에 주둔하는 것은 조선이 명으로 오가는 길을 뚫어주는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충신은 나를 적으로 보고 격퇴하려 하고 있다. 도대체 나를 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천자의 명을 받고 출병한 나를 친다면 바로 천자를 치는 것이므로 항차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유흥치는 사세가 불리하니 조명(朝明) 간의 관계를 말한다. 그러면 강도짓을 말았어야 했다. 그는 접경 지역에서 삼국관계가 미묘하게 돌아가는 것을 이용하고 있었다.

의심많은 한양의 조정 신료들이 밀서를 받고 들고 일어났다. 정충신이 명과의 관계를 파탄내려고 하는 짓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싸울 건덕지를 찾는 중에 좋은 먹잇감이 하나 나타났다고 그들을 보았다. 자신들의 신념과 애국충정을 토로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부모국의 장수에게 감히 대들다니, 그 자를 당장 압송해야 할 것이오!”

“그러게 말이오. 명군이 주둔하려면 군량 징발 정도는 봐주어야 하는데, 그걸 못참고 적으로 몰아 처치하려 하다니, 그 자가 제 정신인가?”

군주나 신하들은 누구의 재주가 특출하면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고 견제했다. 적을 물리치고 영토를 보전했어도 장하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짓눌러버리는 어떤 결기를 갖고 있다. 이순신도 이런 이유로 두 차례나 백의종군했을 것이다. 현지 사정도 모르고 단편적인 지식이나 정보로 한 사람 병신을 만들어버린다. 똑똑하면 더 가열차게 밟는다. 정충신도 마찬가지였다. 중신회의가 소집되고, 쩌렁쩌렁 고함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부모의 나라 군사를 적으로 간주하여 발진하겠다고 하니 말이 되느냐고 유흥치가 항변하는데, 일응 타당성이 있소. 우리가 대국에게 혼찌검이 나면 어떡하려고 그런 망동을 보이는 것인가?”

“유흥치가 음해했다고 장계를 올렸는데 사실은 정충신이 음해했군. 후금과 밀착 관계에 있다면 그럴 수 있지. 이는 부모국에 대한 모반이네. 명국을 바라보는 지점은 자식이 부모에게 우러르는 효심과 같은 것, 이것을 부정하고 적으로 삼아 대적하려 했다면 윤리도덕을 망치는 일이오. 동방예의지국으로서 치욕스런 일이며, 민망한 일이오이다.”

“당장 잡아들입시다. 정신나간 자를 일국의 장수로 내보냈으니 나라가 이 꼴 아닌가.”

그들에게는 사대가 뼛속깊이 박혀있었다. 유흥치가 저의를 숨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명나라 조정조차 그를 의심하고 있는데, 편지 한 장으로 조선의 분위기는 일순간에 바뀌었다. 그만큼 가벼운 나라였다.

사대에 쩔어있는 조정 신료들은 혹시나 명나라 심기를 건드리지나 않았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우리가 대명의 군사를 먹이는 것은 후금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백성들이 힘들어도 견뎌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정충신이 대명의 장수를 음해한다.”

조정에서는 정충신 호출을 명했다.

한편 유흥치 군사는 가도와 부속 섬에 들어와있는 후금 세력을 축출하기 시작했다. 명나라와 조선국에 결백과 용맹성을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후금과 화약을 맺었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있는 만큼 오해를 벗겨내야 한다.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진인이라면 잡아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후금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유흥치가 우리와 화약을 맺은 것은 우리에 대한 기만술책이었다. 우리를 배반했으니 그 자를 부숴버리자.”

후금은 선단을 꾸려 가도로 진격했다. 급보로 이 사실을 접한 정충신이 여유있게 속으로 웃었다.

“유흥치는 지 꾀에 지가 넘어갔다. 나는 병력 손실 하나 없이 그 자를 제거하게 되었군. 군사들은 쉬어라.”

영문 모르던 병사들이 모처럼 해방감을 느끼고 낚시 도구를 챙겨서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건져올린 것이 한결같이 사람의 시체들이었다. 해류를 따라 남하하는 시체들은 꾀죄죄한 치파오(旗袍) 차림이었다. 치파오는 치런(旗人)이라는 만주족 남녀가 입던 두루마기의 하나인데 말타기와 활쏘기에 적합한 활동적인 옷이었다. 옆이 터진 옷으로 남녀 누구나 즐겨입는 평상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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