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61)

6부 3장 유흥치 난(561)

가도 상황은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유흥치가 가도의 무리들을 강압하여 후금과 내통하고 후금국에 투항하려 하는데, 이것이 들통나자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도리어 후금의 백성들을 친 것이다. 몇몇 못마땅한 장수들과 한인(漢人:중국인) 상인들도 죽였다. 모문룡-유흥치가 가도를 분탕질하면서 가도는 어느새 조선의 골칫거리이면서 삼국의 격전장으로 변해있었다. 해류를 따라 떠밀려온 시체들은 바로 이때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정충신은 현재의 위치에 서있으라.”

정충신은 조정의 하명으로 출진을 중단했다. 번연히 유흥치의 흉계에 놀아나고 있는데도 조정 신료들은 정충신을 견제하기만 했다. 밀어붙여야 할 때 밀어붙이지 못하면 적이 발흥할 기회를 준다. 아닌게 아니라 유흥치가 기고만장하였다.

정충신은 스스로 움직이는 대신 총융사 휘하의 경포수와 어영군을 평안병사 유림에게 배속시키고, 정예병들을 안주, 정주, 구성 해안선과 산악지대에 배치하여 유흥치 일당의 약탈에 대비하도록 명했다.

군사가 막히자 유흥치가 어느날 차관 이매(李梅)를 서울로 보내 정충신이 자신을 공격하려 한 까닭을 따졌다. 인조는 처음 이매의 면담을 회피했으나 신하들의 종용으로 그를 만나 정충신의 토벌 시도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전선의 노고는 이런 중앙의 결정으로 헛되이 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박한 현장 상황을 알지 못하니 공리공담(空理空談) 밖에 나오는 것이 없지. 유흥치의 오만과 야욕을 더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지 않는가.”

정충신은 조정의 시각이 어떠하든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유흥치는 더욱 화가 나 다른 차관 이현을 조선 조정에 보내 항의했다.

“정충신이 가도 사람들이 배 만들고 숯 굽는 것을 방해했다. 토벌에 나선다면서 나의 정탐꾼들을 체포하고 살해했다. 이를 멈추지 않으면 신하국을 적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인조는 다시 문안관 정유성을 가도로 보냈다. 신하들이 어떻게든 유흥치를 달래야 한다고 주문한 까닭이었다. 유흥치는 정유성에게 따졌다.

“내가 섬 안의 훼방꾼들을 제거했는데 정충신이 나를 공격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정충신이란 자가 목안의 가시처럼 노는 것은 명과 조를 이간질하는 술책이 아닌가? 이런 자를 징치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징치하겠다는 것이냐. 그를 내버려두면 가만 있지 않겠다.”

“진노를 멈추십시오.”

“조선이 천조(天朝)를 범하는 오랑캐는 토벌하지 않으면서 명나라 장수를 향해 군사를 들이대는 까닭이 무엇이냔 말이다. 부모와의 의를 끊고 오랑캐와 친선을 트려는 것은 광해의 뜻 아니던가. 정충신은 친금배명을 따른 광해의 졸개였지 않았더냐.”

“장군의 뜻을 상부에 올리겠습니다.”

뼛속깊이 사대에 절어있는 것은 정유성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것이 조선국의 국체였고, 신념의 체계였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가치 지향이다. 그러므로 명나라에 대든다는 것은 어버이에게 머리를 쳐드는 것만큼 무도한 일이 되는 것이다.

“섬 안에 군량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상부에 올리겠습니다.”

“당장 급하다.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유흥치는 정유성을 돌려보낸 후, 평안도 일대에 부하들을 풀어 곡물을 거둬 운반해 오도록 명령했다. 그 군량이 자그마치 오천 석이었다. 관서지방 주민의 곡간을 탈탈 털었으니 그들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충신은 유흥치의 약탈 실상을 알리는 첩서를 조정에 보냈다. 신료들은 유흥치가 노여워할까 우려하여 이를 중도에 파기해버렸다. 그런 태도들이 유흥치의 작폐를 더욱 조장하고 있었다.

“답답한 일이로군.”

정충신은 조정이 유흥치에게 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다닌 형국을 방치할 수 없었다.

신미년(1631년) 3월, 정충신 군사가 배를 몰아 가도 방향으로 들어가고, 후금군도 출병하고, 명의 요동순무도 유흥치를 교체한다는 설이 나돌았다. 가도의 한인들이 유흥치의 잔인성에 상당수 희생되었다고 진정한 것이었다.

유흥치는 부장 심세괴를 의심하고 하국주를 심복으로 앉혔다. 민심이 사납게 돌아간 것은 심세괴 일당이 저지른 모함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심세괴 체포에 나섰다. 체포 이유는 정충신과 밀접하게 접선하고 있다는 죄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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