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불위 연후에
김용표(전 백제고 교장)

올해는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이다. 정확히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기에 올림픽과 미국대통령 선거와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가 함께 돌아간다. 그래서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재앙 속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는 실시될 예정이고 또 선거일이 코앞에 다가오니 여러 생각이 든다.

선거철마다 입지자들은 자신은 국민을 위해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할 것이고 지역발전을 위해 무엇을 가져오겠다고 서로 앞 다투어 주장한다. 아마도 그동안의 삶속에 갈고 닦은 경륜을 펼쳐 이 나라에 기여하고 싶은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선거 뒤에 얻게 되는 무소불위의 국회의원 권력을 조금은 염두에 둔 적도 없지 않을 것이고, 국회의원 정도 되면 아무 말이나 해도 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한다면 언제든지 한 말을 뒤집어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정치풍토가 입지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과도한 정치불신이긴 하지만 이런 정치적 유습은 어제 오늘 일만도 아니지 않는가.

오랜 역사가 있다. 오죽하면 당쟁이 심했던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사대부는 유소불위 연후방가이고국사(有所不爲 然後方可以做國事)라고 했다. 사대부는 삼가는 일이 있은 뒤에야 국사를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도 ‘사람은 하지 않는 게 있어야 큰일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 이런 말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못하는 말이 없고 못하는 일이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국회의원보다 말을 삼가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유소불위의 국회의원을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헛소리가 될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평범한 국민보다 선출직 정치인이 더 높은 수준의 인격과 도덕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 정치인을 국민의 리더이자 시대의 리더라고 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직업정치인을 폄하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국민의 지적·문화적·경제적 수준이 높아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치인 스스로도 굳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착각에 빠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보다 조금 더 열정적으로 공익에 봉사할 의욕이 있고 그런 일을 행복해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종교와 이념과 세대, 교육과 경제와 복지 등 끝없이 대립하는 국면에서도 증오를 다독이고 위트와 교양이 넘치는 정치적 언사로 국민을 위로하고 달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그런 분들이 정치를 하고 그런 분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정치는 예술이 되지 않겠는가. 정치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사랑받고 존경받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정치인의 여정은 얼마나 아름답게 마무리되겠는가.

사람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말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이 무엇이겠는가. 그저 겸손과 따뜻함이 스며있는 말이 아닐까. 유머까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사람이 남의 스승노릇만 하려하고, 자신이 리더라는 자부심이 강해질 때 말은 추해지기 시작한다. 오만과 아집의 악순환이 시작되고, 그때 불행은 시작된다. 그래서 선출직 공직자라면 ‘아름답게 말하는 능력’을 자신의 가장 큰 재능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무능한 정치인은 말하기의 무능에서 출발하여 결국 생각과 판단의 무능에 이르기 때문이다. 만일, 당선된 국회의원이 4년의 임기로만 만족할 각오로 소신껏 일하고 ‘아름다운 말하기’로 일관한다면 ‘정치의 초심’은 기어코 지켜지지 않을까. 선거 후에, 뽑은 사람이나 뽑히는 사람이 부끄럽고 불쌍해지지 않으면 좋겠다. 삼가고 조심하는 유소불위의 국회의원을 바라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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