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565)

6부 4장 귀양

정충신의 상소문은 이어졌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처지에 전선으로 나가겠다는 것도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어 상소문을 고쳐 썼다.

-흥치가 신에게 앙심을 품은 것은 신이 오로지 가도의 변란을 성토하고 토벌하려고 했던 일 때문인데, 신이 이미 그와 원수가 되었다면 사세가 서로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이 지금 한 나라의 군무(軍務)를 맡고 있는 이상 꼭 한양에서만 근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변방에 일이 생기면 신부터 길잡이가 되어 채찍을 잡고 달려가야 하는데, 돌이켜보니 지금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원수로 인하여 걱정이 되는 모양이나 흥치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신에게 여전히 화가 미치고 있습니다. 대저 셩격이 여우와 같고 하는 짓이 도깨비같아 행동을 측량하기 어려운 흥치의 비루한 꾀에 조선의 신하들이 부화뇌동하는 것을 보자니 한시라도 자리에 연연할 마음이 없습니다. 신은 군무의 직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정충신의 상소문을 받아본 상감은 “종래의 책임을 다하라”는 비답(批答:상소문에 대한 임금의 답변)만을 내렸다. 반정 이후 신권(臣權)이 강화된 풍토에서 그러잖아도 유약한 임금이 뜻대로 왕권을 휘두를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왕은 신하들에 업혀가거나 기생하는 정도로 권위가 추락해 있었다.

한편 후금의 홍타이지는 조선 조정에 “가도 정벌에 필요한 전함 100척과 배를 저을 격군을 의주 포구로 보내라. 듣지 않으면 적으로 삼겠다”고 통보했다. 다급해진 조정은 부랴부랴 어전회의를 열었다. 영의정 오의겸이 왕에게 보고했다.

“팔도부원수 정충신을 속히 현지로 보내는 것이 지당하다고 사료되옵니다. 그가 오랑캐 진영을 속속들이 압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배경없는 정충신을 홀대하더니 일이 생기자 앓고 있는 그를 다시 불러내자고 하는 것이다.

“그의 군사들은 모두 해산하지 않았더냐.” 왕이 물었다.

“물론 지금 그의 수하에는 군병이 없습니다. 대신 황해도의 군병을 선발하여 보내는 것이 마땅해보입니다. 각도의 군사를 선발하여 보내는 것은 거리가 멀어서 어렵고, 시간 또한 촉박합니다.”

왕이 교서를 내리고, 정충신을 불러들였다.

“병치레는 어떤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정충신은 정중히 응답했다.

“경의 우국충정을 과인이 안다. 만백사 제하고 출병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허나 신의 출정에 앞서 후금의 중남(仲男:차남)이 불법으로 우리 강토를 침범한 것을 따지기 위해 사람을 뽑아 후금왕에게 먼저 서신을 보내고, 이어 저들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되옵니다.”

왕도 생각해보니 그런 절차를 밟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중 외교적 협상을 벌일 때도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그리하라. 다만 우리나라는 적임자를 잘 선택하지 못해 예로부터 그 임무를 능히 해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 요즘에 와서는 우리의 뜻을 바로 전달하지 못할 뿐아니라 모욕까지 당하고 있다. 경은 무사들 중에 쓸만한 사람을 알 것이니 천거하라.”

“이응징이 능력도 있고 인물도 있고 힘도 쓰고 글도 잘 압니다. 이 사람을 부사(副使:正使를 돕던 버금 사신)로 삼아 실무를 맡도록 하소서.”

이응징은 평안도 일대 군영에서 잔뼈가 굵은 직업군인이었다. 글도 밝아 정충신과 문장을 대적할 정도로 문무를 겸장했다. 상감은 이를 비국에 알리고 준비를 마치는 대로 출발할 것을 명했다. 왕이 정충신에게 다시 물었다.

“경이 지금 평안도로 가면 어디에 머물 것인가.”

“평양이나 순안 사이가 주둔하기에 마땅할 것 같사옵니다. 다만 신의 수하에는 군병이 없으니 만약 적진에 깊숙이 들어간다고 하면 그 형세가 고립되고 위태로운 것 같으니 안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경이 안주성에 들어가 지키는 데 무리가 없다고 하지만, 외부에서 구원병이 지원되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임진왜란 시 명나라 장수 양호도 승리를 거두었으니 신이 양호만 못하겠나이까? 신도 안주성에 들어가 굳세게 지키고자 합니다.”

“장하다. 적들이 청천강의 모든 배를 훔쳐 타고 가버리면 어떡할 것인가.”

“청천강가에는 배 한척이 없습니다. 전라도 수군이 가도의 수군을 쓸어버린 뒤 배들이 사라졌고, 그들은 지금 모두 귀향했나이다.”

“그러면 진공상태 아닌가. 들어오라고 길을 내주는 격이 아닌가?”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