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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역사 간직한 국립5·18민주묘지민주화운동 역사적 산실 역할 ‘톡톡’

불혹의 역사 간직한 국립5·18민주묘지
산화한 민주화 열사 넋 기리기 위해
지난 1997년 건립 이후 800명 안치
행불자·망월동 묘역부터 추모관까지

민주화운동 역사적 산실 역할 ‘톡톡’
 

5·18 40주년…찬란한 부활의 빛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다. 5·18 40주년을 앞두고 5월 황금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함께 오월 영령들이 모셔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보는건 어떨까? 민주묘지는 오월 영령과 함께 민주주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사진은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위로 별과 달이 흐르는 모습.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편집자 주>

끊긴 절규에 펄럭이며 그날은 바람이 건너고라도 있는가
찌르고 짓이긴 살덩이 속에도 계절은 다시 돌아와서 빛은 내리쬐는가
김시종-‘이 깊은 하늘의 바닥을’ 중에서

2020년.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되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 불혹의 나이를 맞는 해이다. 다가오는 5·18 4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이번 주말 군부독재자들의 총·칼에 희생된 민주 열사들을 기리는 국립5·18민주묘지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국립5·18민주묘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옛 전남도청과 전남대 정문, 금남로 일대 등에서 희생 당한 800여명의 오월 영령을 모신 곳이다. 이곳은 지난 1997년 망월동 묘역에서 국립묘지로 승격, 건립된 후 오월 정신을 계승하고 역사적 의미를 확인하는 상징적인 공간 역할을 해오고 있다. 아울러 의로운 희생의 가치와 자유, 정의를 갈망했던 이들의 신념이 곳곳에 스며든 곳으로 해마다 수백, 수천명의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5·18민주묘지는 시민군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의 최후 진압 작전 과정에서 산화한 윤상원 열사 묘비를 비롯해 행방불명자 묘역, 민족 열사들의 삶과 저항의 여정을 담아낸 유영봉안소, 그들의 영령을 기리는 5·18 추모관 등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달랠 공간이 다양하게 조성돼 있어 역사적 산실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민족민주열사묘역1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를 위해 투신·산화한 민주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민족민주열사묘역(옛 망월묘역).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윤상원·박기순 열사 묘비

5·18민주화운동의 산실 민주묘지를 방문한다면 777명의 오월 영령이 안치된 묘역을 빼놓을 수 없다. 제1묘역에는 5·18 당시 계엄군의 횡포에 사망한 시민군들이 안장돼 있고, 제2묘역부터 9묘역까지는 민주화 운동 이후 사망한 사람들이 묻혀있다. 현재 묘역은 모두 782기를 안장할 수 있지만 이달 기준 777기가 잠들어 있다.

이와 함께 제2묘역에는 시민군의 대변인이자 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윤상원 열사와 들불야학을 창립한 박기순 열사의 묘비가 마련돼 있다. 윤 열사는 5·18 당시 작전명 ‘화려한 휴가’로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졌으며, 들불야학에서 노동권과 평등사회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등 노동·빈민·학생·문화 운동의 선구·핵심적 역할을 맡아 야학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와 함께 윤 열사 묘비 바로 옆에는 들불야학 3인으로 손꼽히는 박기순 열사 묘비가 있다. 박 열사는 윤 열사와 함께 들불야학을 창립, 매일 밤 노동자들에게 노동권과 평등 사회의 중요성을 가르치며 야학을 이끌었던 인물로, 5·18 당시 최초의 민주언론인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해 시민들에게 계엄군 학살의 실상을 알리고 시민군에게 저항·임무 등을 전달하는 등 투쟁 의지를 불태운 열사다.

 

추모탑뒤 묘역이 보이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산화한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5·18민주묘지 전경.  /국립5·18 민주묘지 제공

◇행방불명자 묘역

5·18민주화운동 유공자가 잠들어 있는 제1묘역에서 제9묘역까지 참배를 하고나면 민주 묘역 한편에는 이름 모를 행방불명자들의 묘역이 발길을 이끈다. 제10묘역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기록이 남아있지만 행방이 불명된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5·18민주화운동이 40주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는 희생자들을 위한 공간이자 그들을 기리는 가묘가 조성돼 있다. 적막감이 흐르는 묘역에는 이름 석 자만 고스란히 적혀 있고, 사진이나 기록조차 없는 묘비도 여럿이지만 행방불명자 84명의 오월 정신을 참배하기에는 적합한 곳으로 손꼽힌다. 현재 행불자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5·18 당시 사라진 240여명을 찾는 가족들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매년 5월 18일마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 인사들이 방문해 참배하는 등 광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 중 하나다.
 

추모관
전시실과 영상실, 자료실이 있는 5·18 추모관.  /임문철 기자 35mm@namdonews.com

◇5·18 추모관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간직한 민주묘지의 중간 코스는 열흘간의 민주화운동을 상세하게 기록한 5·18 추모관이다. 추모관은 5월의 진실을 밝혀낼 희생자의 유품부터 아이들의 역사교육의 장 역할을 하는 도서실까지 단순 관람보다는 직접 참여하면서 5·18 실상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아울러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과 5·18민주화운동의 사실적 기록을 담아낸 전시실 등 4개 공간이 실내에 마련돼 있어 사시사철 참배객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특히 추모관은 광주가 ‘민주화 성지’라는 의미를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물과 흙, 빛 등의 오브제를 활용해 건립됐다. 또 구멍·틈·형상화된 창·좁은 문 등 실내 건축장치를 통해 오월 정신의 빛을 연상하게끔 조성됐다.

특히 추모관 2층에 마련된 민주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건널 수 없는 역사의 강으로 흐르면서 1층 추모의 공간에 도달하면서 추모객들의 아픔을 ‘한줄기 눈물’로 형상화하고 있어 참배의 분위기를 더한다. 이와 함께 추모관 내부에 조성된 샘은 변하지 않는 순수한 정신의 근원이자 샘솟는 민주주의를 상징하고, 강물은 끊이지 않는 진실하고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상징한다.
 

유영봉안소 내부2
오월 영령들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장소인 유영봉안소.  /국립5·18 민주묘지 제공

◇5·18 구묘지(망월동묘지)

5·18 사적지 24호로 지정된 망월동 구묘지는 지난 1980년 5월 당시 산화한 영령들이 묻혔던 곳으로, 5·18의 역사와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대표적인 사적지 중 하나다. 지난 1994년부터 묘지 성역화 사업이 추진됐고 지난 1997년 5·18민주묘지 완공과 함께 이장 후 현재는 가묘 형태로 복원됐다. 5·18 당시 시민들은 처참하게 훼손된 주검을 손수레에 싣고 이곳에 묻었으며,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거나 지난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함락 때 희생된 주검들은 청소차에 실려와 묻혔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당시의 참상을 처절하게 안고 있는 곳으로 5·18민주묘지 완공 후 5·18 희생자들의 무덤은 대부분 이장됐다. 현재 망월동 묘역에는 당시 희생자 가묘 149기와 5·18이후 진상규명 등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민주 열사 39기 등 총 490기 영령들이 영면해 있다.

이와 함께 실내에서 민족 열사들의 추모 공간을 찾는다면 망월동묘지 내 조성된 유영봉안소가 안성맞춤이다. 이곳은 영령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민족 열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우리나라 전통 고분인 고인돌 형태를 응용해 건립된 게 특징이다. 지난 2015년 문을 연 이곳에는 지역 민족·민주열사 62명 중 48명의 유영이 안치돼 있다.

한편 지난 1982년 2월에는 황석영과 김종률 등 광주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광주 망월동묘지에서 영혼 결혼식을 열고 ‘님을 위한 행전곡’을 행사 말미에 합창하면서 이 노래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정다움 기자 jdu@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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