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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영광 연안김씨(延安金氏) 직강공파 김인택종가 / 매간당고택

<14>영광 연안김씨(延安金氏) 직강공파 김인택종가 / 매간당고택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나라의 본보기 된 미풍양속 ‘효행(孝行)’실천

신라 왕가 후손 김섬한 시조
김영 영광 입향·김인택 종가열어
세 효자 기리는 정려누각 하사
진주강씨 할머니 집안의 보배
독특·위엄 있는 건축 민속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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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택에 있는 서당(왼쪽)과 삼효문
안채(우측), 중문채, 아래채 전경

전남 영광의 불갑산에서 발원한 불갑천은 가사평야를 가르며 서해바다로 흘러내린다. 가사평야 남쪽 들판이 ‘서강들’과 ‘동편앞들’이고, 이 넓은 들을 바라보고 동북을 향해 널찍하게 자리 잡은 종택이 연안김씨 직강공파 종가 매간당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234호)이다. 2층 누각형 대문인 ‘삼효문(三孝門)’은 종가의 상징이다. 세 사람의 효자가 나온 가문을 조선의 미풍양속 본보기로 삼기 위해 고종 때 효자정려문을 하사했다. 신라 왕가, 고려 명문세족, 조선 풍속명가에 이르기까지 가문의 품격을 계승하고 있는 영광 연안김씨 직강공파 김인택종가를 찾아 유교사상의 근본인 효(孝)를 실천하며 살아온 집안 내력을 살펴본다.

◇김알지 후손 김섬한 연안김씨 시조

신라 김씨왕가 후손 중에 직언하다가 황해도 연안으로 유배당한 신라 왕자가 있었는데 그 후손 김섬한(?~?)이 연안김씨 22개 파의 시조다. 세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김여지(1370~1425,연안김씨 7세손)의 셋째아들 김승(?~1464)이 직강공파를 열었다. 김승의 5세손인 김영(1540~1598)은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김세공(1521~1586)을 따라 영광 불갑에 입향했다. 김영의 셋째아들 김인택(1575~1666)이 영광 군남 동간리에 종가 터를 잡아 16세손에 이르기까지 종가를 이어오고 있다.


◇한집안 세 효자(孝子) 기리는 정려문

영광 연안김씨 직강공파 김인택종가의 세 효자는 2세 김전, 7세손 김재명, 8세손 김함이다.
김인택의 아들 김전(1599~1680)은 70세에도 색동옷 입고 부모님을 즐겁게 했고 부모상을 당하자 불효를 성찰하며 3년 동안 죽으로 끼니를 연명한 효자다. 7세손 김재명(1738~1778)은 부모를 공경했고, 시묘살이(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의 도리로 움집에서 3년간 생활하며 묘소를 돌보는 유교 예절) 중 호랑이가 와서 다른 짐승들을 막아준 일화가 영광군수에게 알려져 효자로 기록됐다. 8세손 김함(1760~1832)은 양아들로서 효행이 탁월하고 한겨울에 두꺼비를 구해 부모병을 치료한 효자다. 한집안에 3명이나 효자상을 받았으니 나라에서 미풍양속의 본보기로 삼을만했다. 고종 때 임금의 친형 이재문이 현판을 써서 효자정려문을 하사하고 귀감이 되도록 했다.

◇가문 일으킨 할머니 효부

종가 10세손 김시수의 부인 진주강씨(1809~1900)가 시조부님께 효도하면서도 길쌈으로 큰 부를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지주로 성장하게 되는데, 아들 김사형(1830~1909, 호는 매간당)으로 하여금 종택을 건축하게 했다. 문과에 나가 벼슬했던 증손자 김종관(1870~1943)까지 3대가 재산 관리를 확대해 대지주 종가가 됐다. 14세손 김창영은 전통을 지켜 신학문을 거부했고 일제 무단통치 때 적몰된 가산을 끝까지 환수받아 종가 자산을 수호했다. 15세손 김석주(1916~1980)는 일본에 유학하고 해방 후 정계에 진출했으나 5·16군사쿠데타 이후 낙향해 마을회관을 짓고 땅을 내어 길을 만들고 청년운동·마을운동에 힘썼다.

◇종택은 거대 규모 민속건축 보물

독특하면서도 위엄 있는 문간채가 있는 종가 건물은 19세기 말 양반가의 구성요소를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도록 잘 보존된 국가 문화재로서 매간당(梅澗堂)고택이라 부른다. 종택은 평야가 한눈에 보이는 야트막한 산자락, 매화꽃 떨어지는 형국의 풍수길지에 넓게 자리잡고 있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평가돼 1998년1월5일 중요민속문화재 제234호로 승격됐다. 종택은 총 115칸인데 안채·사랑채·사당·곳간채·문간채·중문간채·마부간·서당·내부호지집·외부호지집(지키는 사람이 사는 집)·삼효문·연못터 등이 남아있다. 독특한 구조의 안채는 56칸으로 종택 전체 규모를 짐작할만하다. 1942년 증설로서 현재의 규모를 갖게 됐다. ‘근자필성(勤者必成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가훈을 실천하며 지켜온 종가는 건축 외에도 고문서·문집 등 3천660여점과 종가음식 등을 보존하고 있다. 종가의 보물들을 대중이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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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부엌과 중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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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우측)과 장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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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택의 사랑채(중앙), 마부집(우측은 마부가 살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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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간당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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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민속문화재 제234호 영광연안김씨 종택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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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증축된 아래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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