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물질의 미세구조를 관찰하는 기계인 방사광가속기는 이른바 ‘초정밀 거대 현미경’으로 불린다. 차세대 신소재와 초소형 기계부품, 신약 등 다양한 신물질 개발 분야에 활용되며, 10나노미터(nm·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공정을 비롯해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등이 방사광가속기의 대표 제품들이다.
우리나라에는 1994년과 2015년 각각 준공된 3세대형과 4세대형 등 2대의 방사광가속기가 포항공대 내에 있다. 그러나 2대의 방사광가속기로는 연구·개발 수요 증가와 장비노후화로 질적·양적 공급 모두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따라서 이번에 공모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3·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장점만을 접목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는 기존 3세대 보다 빛의 밝기가 100배 이상 높고, 실험공간인 빔라인이 적은 4세대와 달리 원형으로 설계돼 40개가 넘는 실험이 동시에 가능하다.
이처럼 이름도 생소했던 방사광가속기 추가 구축 배경에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신분야 전문가인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청주시 청원구·5선 당선인)과 이시종 충북도지사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못한다.
2008년 재선 때부터 중부권 방사광가속기 유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변 의원은 이 지사와 함께 2019년 3월 전문자문단을 구성하고 본격 추진에 나섰다. 때마침 정부는 4월 시스템반도체·바이오·미래차 등 3대 분야 중점 육성을 발표했고, 이에 변 의원은 방사광가속기 추가 구축을 건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2017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의결대로 당분간 대형가속기 추가 구축은 검토하지 않기로 해 설득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절호의 기회가 왔다. 2019년 7월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한 것이 방사광가속기 추가 구축의 절박감을 가져다 준 것이다. 변 의원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민주당 내 ‘소재·부품장비인력발전 특별위원회’ 위원으로서 산업계 지원을 위한 방사광가속기 추가 구축의 공감대를 구축하는 한편,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정부 설득에 나섰다. 또 국회 상임위와 국정감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상대로 질의와 설득을 이어나갔다.
변 의원이 주장한 주요 논리는 방사광가속기 추가 구축은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필요할 정도로 시급한 사안이고 산업계 지원이 핵심 목표인 만큼 수요처에 인접한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정부는 방사광가속기 추가 구축을 검토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주관부처인 과기부는 지난 3월 부지선정 공모를 시작으로 사업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부지선정 평가의 주요항목에서 ‘입지요건’ 배점이 50점으로 상당히 높았는데, 이는 산업지원용 추진을 주장했던 변 의원의 의견과 맞닿았다.
그런데 전남도(나주시)에서 지역균형발전을 내세우며 평가항목 및 기준 재검토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치전에 나선 데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호남유치 발언이 변수가 되면서 가열됐다. 변 의원은 즉시 이 대표 명의의 정정 문자메시지를 받아내 사태를 수습하는 한편, 선거이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과기부 장관에게 당초 목적이 산업지원용임을 재확인하고 공정한 부지선정을 다시 한번 요청했다. 결과적으로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장을 비롯한 관련 분야 전문가 14명으로 구성된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정치적 고려 없이 과학적·객관적 시각에서 당초 공모대로 심사에 나섰고 최종적으로 충북도(청주시)가 1순위 우선협상지역으로 선정됐다.
전남도는 한전공대 설립 확정 이후 2019년 하반기에 갑자기 방사광가속기 유치 의사를 밝힌 데다 과기부가 부지선정 일정을 고지한 뒤에야 서명운동 등에 나서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좋게 평가하면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고도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호소하면서 호남 싹쓸이 등 정치력을 무기로 막판 뒤집기 전략을 구사해 결선까지 올랐다는 자체만으로도 선전했다고 본다.
이번 방사광가속기 유치전을 계기로 전남도도 멀리 보고 대형 국가프로젝트에 대해 선제적 발굴 및 대응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느끼고 배운 지식과 경험을 사장시키지 말고 지역사회가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찾는 기반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그리하여 단합된 힘을 바탕으로 전남의 국립 의과대학과 여수의 2022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유치를 갈망한다.
윤종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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