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의 세상읽기/그 많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정부가 초정밀 거대 현미경으로 불리는 방사광가속기 부지로 충북 청주를 확정 발표하던 날, 광주·전남을 대표하며 목소리를 낸 정치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과 한 달 전 국회의원 총선에 나섰던 그 많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낙선한 후보들이야 그렇다 치고 금배지를 단 18명의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들 중 그 누구도 총선 때 조석으로 남발하던 흔한 성명서 한 줄 내지 않았다.

다만 김영록 지사만이 부지선정 발표가 있던 날 강한 유감을 표명했을 뿐이다. 국회의원 당선인 일동의 면피성 성명은 이틀 후였다. 오히려 호남권 범시민단체와 상공인, 대학교수단 등 반발기류가 갈수록 커지면서 지역민들 사이에 민주당에 대한 배신론이 회자 되고 있다.

DJ를 통해 정권교체로 호남의 한을 풀겠다며 싹쓸이했던 30년 전 정치로 회귀하면서까지 이번 선거에서도 광주·전남은 문재인 정부에 압승을 안겨주었다. 이번 선거도 막대기만 꽂아도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라는 과거의 등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결과를 지켜보며 과거 동서로 갈렸던 지역감정이라는 높은 장벽과 같은 악령이 다시 되살아 난 것이라는 우려와 탄식이 있었다. 그 우려와 탄식을 현실로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 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지금 목격하고 있다. 야당의 목소리가 없어졌다.

지역민들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국회의원 선거 일주일 전인 4월 8일 민주당 광주시당에서 가진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방사광가속기를 광주·전남에 구축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며 공분하고 있다. 선거용 발언이었는데 지역민들이 너무 순진한 것이었을까.

정부의 부지선정을 앞두고 정치권이 온갖 지혜와 힘을 모았어야 할 시기의 정점에 민주당은 오로지 선거에만 올인했다. 즉 나주 유치의 당위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논리 전파의 골든 타임을 놓쳤다. 그러고서 이제야 이어지는 반발은 뒷북으로 비추어진다.

또 정부의 결정에 불복하거나 발목을 잡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여러모로 국민에게 부정적 여론만 양산 시킬 수 있다. 주요 포털의 관련 기사에 달린 수백 수천 건의 댓글이 여론의 가늠자는 아니지만 보기에 떼쓰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한번 결정한 청주를 번복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면 나주에 추가적인 구축을 촉구하는 논리 개발이 옳다.

김영록 전남지사가 광주시장과 전북지사까지 불러들여 합동 기자회견까지 가지며 나름대로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처음부터 전남은 들러리였다. 결과적으로 그냥 호들갑만 떨었다. 가속기 사업은 경제유발 효과 6조 7천억 원, 고용효과 13만 7천여 명, 부가기치 2조 4천억 원으로 추산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데도 철저하게 전략 부재를 나타냈다.

특히 홍보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방사광가속기는 너무 생소한 용어다. 지역민들 가운데 방사광가속기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호남을 살리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라는 접근이 필요했었다. 그나마 지역 신문과 방송 등 언론들이 선거 기간 중에도 가속기의 나주 유치 필요성을 집중적이고 심층적으로 보도하며 힘을 보탰다.

그러나 거기에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이라거나 진문이네, 친문이네 하며 잘난 체하던 정치인의 모습은 없었다.

정부는 청주선정 발표 이유로 전국 어디서나 쉽게 올 수 있다는 입지와 뛰어난 교통망을 강조했다. 이어 오송생명과학산업단지와 대덕연구단지 등 연구 인프라가 밀집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의 선정 이유는 한마디로 궤변이다. 전국 어디서나 오기 쉬운 교통망을 이유로 든다면 SOC가 낙후된 전남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다는 얘기다. 교통망을 놓고 접근성으로 따진다면 서울이나 경기도가 적격일 것이다. 예견된 들러리였다는 얘기다. 그럼 호남은 영원히 낙후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가 정부산하 공기업을 각 시도로 내려보낸 것은 ‘지방균형발전’이 대의명분이었다. 모든것은 누가봐도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유권자를 주인님으로 섬기겠다는 입바른 소리를 믿지는 않지만 너무 빨리 변신한 당선자님들께서 이번에는 김영록 지사와 함께 힘을 보태 가속기의 추가선정 소식을 지역민들에 들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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